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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 散文

귀여운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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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이 토실토실하다. 이렇게 생명을 이어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고 보면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은 위대함이다.

 

유기견 한 마리를 얻어왔다. 삐쩍 마른 몰골이 너무나 안쓰러워 돌봐주지 않고는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었다. 개집을 짓고 먹이를 주며 2개월 정도 정성을 쏟았더니 제법 모양이 그럴싸해졌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뜻하지 않게 후진하는 자동차에 일격을 당했다. 그를 땅속에 묻고는 마음이 곤했다.

 

비록 동물이지만 정을 나눈다는 것은 또 다른 인연의 업을 짓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연의 끈을 놓는다는 것은 아픔이 많다. 허허로움이 길어질 때쯤, 또 한 마리의 유기견을 들여왔다. 역시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눈곱이 끼고 삐쩍 말랐으며, 사람을 두려워하는 눈빛과 행동에서 어딘가 모르게 짙은 어둠이 서려있다.

 

또다시 정성으로 그를 돌봤다. 하루가 다르게 멋진 골격이 드러나고 제법 형상이 갖춰지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꼬리를 흔들며 애정을 과시할 줄도 알게 되었다. 서로의 애정을 쏟다 보니 어느새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사춘기도 지나고 반지르한 털에서 윤기가 돌아 여간 예쁜 게 아니었다. 이웃 동네 멋진 총각과 연애를 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두 번 정도 연애를 시도했는데 마침 잘 이뤄졌다.

 

두 달 뒤 예쁘고 귀여운 강아지 7마리가 태어났다. 한 마리도 손실을 입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젖 먹이느라 삐쩍 마른 어미 개가 젖을 생산하려고 먹성 좋게 먹어대는 모습에서 거스를 수 없는 모정이 느껴진다. 새끼들은 서로 젖을 물려고 아웅대고, 어르렁거리며 장난이 깊어가는 모습에서 생명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자칫 버려졌을지도 모를 유전자를 이렇게 사랑스럽게 이어 갈 수 있었음은 행운이랄 수밖에 없다.

 

7마리 모두 함께 살아갈 수는 없다. 젖 떼면 그들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입양해야 한다. 인연을 짓는다는 것은 또다시 인연을 끊을 수밖에 없는 숙명의 연장선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동물을 사육한다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과 정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잔인한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 동물을 어찌 사랑할 수 있겠는가.

 

강아지들이

부디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2011년 11월 21일 - 천안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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