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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소요산(동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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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이 컸던 만큼 1호선 전철의 심장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아마 1호선 전철을 타고 제일 긴 거리를 달려가는 시간이다. 소요산역까지 닿는 전철은 띄엄띄엄이다. 지척에 두고도 그녀를 만나는 시간이 길어졌던 변명이기도 하다. 우리를 태운 전철은 양주역이 종착역이다. 하는 수없이 양주역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한 코스 전인 옥정역에 내려 소요산역 행 열차를 기다린다.

 

낯 선 옥정역 플랫폼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키가 자그마한 초로의 아저씨가 껄렁한 폼으로 말을 걸어온다. 자신은 안동이 고향인데 4살 때 동두천으로 이사 와서 제2의 고향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낡은 망원경을 목에 걸고 바지와 신발은 명품 브랜드로 치장했다. 어디 다녀오시냐고 여쭈니 일출을 맞으러 창동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자랑삼아 뱉는다. 보통은 큰 카메라를 들고 일출을 맞는데, 나그네는 달랑 망원경 하나 들고 해를 더 심도 있게 관찰하고 싶었던 걸까. 하기사 카메라에 담아 저장하는 해도 의미가 있겠지만, 나그네의 가슴에 담긴 일출도 그 나름의 아름다운 역사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소요산역에는 이른 아침부터 등산객들로 붐빈다.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지만 이제야 만나게 되니 잊었던 첫사랑 소녀를 만나는 것처럼 들뜬 기분이다. 자재암을 지나 그녀를 만나기 100미터 전, 쉼 호흡을 크게 하고 한걸음에 달려들었다. 아뿔싸 자빠질 뻔했다. 갈급했던 내 마음과는 달리 쉬 품을 내주지 않는다. 초입부터 가파른 등로가 이어진다. 그리 높은 산이 아닌데도 예사롭지 않다. 하백운대까지 호흡을 몰아 헉헉거리며 능선에 올라서니 내외를 풀고 배시시 웃어준다.

 

낙엽이 쌓인 능선 길에서의 볼거리라면 너른 시야가 자랑이다. 다만, 산 전체가 암질이어서 발걸음에 신경을 써야 한다. 말발굽 모양을 하고 있는 산행로를 돌아 들머리로 돌아오니 마지막 남은 단풍이 따스한 햇살에 가을을 말리고 있다. 너나 나나 또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다.

 

돌아오는 전철 옆자리에 낯 선 이방인이 앉았다. 유별나게 붙임성이 좋은 그는 친구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의정부에 있는 가구 공장에서 일한 지 3년이 넘었다는 그는 46살, 이름은 '모르또자'이며 고향은 방글라데시다. 수도인 다카에 아내와 자녀 3명이 있다고 했다. 한 달에 이백이십만 원 정도 벌어서 백만 원을 가족한테 송금하여 자식들 키우고 생활한다고 했다. 그는 불법체류자는 아니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모습에서 유쾌함이 엿보인다. 앞으로 6년 정도 더 벌어서 고향에 가서 폼 나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꿈을 펴 보이기도 한다. 

 

방글라데시에 방문하면 자신이 가이드해 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취기를 빌어 우리도 방글라데시에 여행 갈 것이라며 확정하듯 얘기했더니 전화번호를 교환하잔다. 그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니  전화를 했다. 그 순간 피싱을 조심하라는 경고 메시지가 동시에 뜬다. 무슬림인 그의 전화번호가 관리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움찔했다. 이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야 하나, 그냥 이쯤에서 해프닝으로 정리해야 하나. 내년 초에 방글라데시에 들어갈 계획이라는 그는, 그때 연락하겠다는 비문을 남기고 헤어졌다.

 

소요산 가고 오는 길에 만난 인연들 또한 나름의 소중한 삶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나는 한동안 가슴에 지문처럼 남아 있을 그들을 아름답게 추억할 것이다. 

 

[산행 일시] 2024년 11월 23일

[산행 경로] 소요산역 - 자재암 - 백운대 - 나한대 - 의상대 - 공주봉 - 소요산 탐방센터(10km)

[산행 시간] 5시간 10분

 

소요산 주차장 단풍
소요산 정상
팥배나무
자재암 일주문
모르또자(방글라데시인)

 

피싱 경고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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