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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隨筆, 散文

테스 형

by 桃溪도계 2024.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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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기일을 맞아 산소에 들렀다가 각시붓꽃을 만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예쁘게 마중 나와서 그저 고맙기만 하다. 아버지 산소에 들러서 이런저런 풀꽃들을 만나는 감회는 언제나 남다르다. 
 
아버지를 만나고 하산하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젖는다.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다는 것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도 알았지만, 봄꽃들의 메신저로 아버지와 만나는 이 시간에도 변함없는 진리다. 1 갑자를 채웠으니 세상 웬만큼 알 만하다 생각했는데, 막상 돌이켜보니 내 삶은 껍데기였다. 2 갑자를 시작해서 이제 걸음마를 떼고 있다.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렇지만 분간 없이 허둥댈 필요는 없다. 당장은 아장아장 걷기만 하면 된다. 서너 살 배기가 세상 살아갈 걱정을 하는 것도 난센스다.
 
지난 1 갑자의 삶을 아등바등 살았지만 아이들 키우고 나니 빈 손이다. 진실된 나의 삶은 지금부터다. 지난 삶의 공과를 살 필 이유도 없다. 없었던 듯 몽땅 덮어 버리고 다시 새 발을 내딛는다. 그렇다고 두려워하거나 서두를 이유도 없다. 아직은 걸음마를 배우는 단계니까 청년이 되는 80살 까지는 열심히 배우며 삶의 지표를 어떻게 세울까를 고민하면서 살면 된다. 
 
60년 전에 걸음마를 배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부모님의 지극한 보살핌 아래 근심 없이 자랐다. 이제는 스스로 자신을 보살피며 걸음마를 떼어야 한다는 점이다. 삶의 이정표도 내가 세우고 방향도 내가 잡아야 한다. 때로는 바람이 불어 비틀거릴 때도 있겠지만 흔들리지 말고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지향하며 걸어가야 한다. 속물적인 욕심이나 허튼 욕망에 기웃거리다 보면 이번 삶도 후회만 남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가치 없는 삶은 무엇일까. 되내어 봐도 뚜렷이 잡히는 게 없다. 두 번째 주어진 삶에서 이 명제를 명확히 찾아내어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지난 삶에서는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절대적인 목표가 있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 삶을 꾸렸다. 울기도 웃기도 하며, 때로는 힘들어하기도 했다. 이제는 아이를 키울 일도 없고 돈을 벌어야 할 명분도 분명치 않다. 
 
광대한 우주에 또 하나의 우주로 태어나서 다시 우주로 돌아가는 동안 반드시 실천해야 할 가치가 있다면 베푸는 삶이다. 지난 1 갑자의 삶에서는 헛된 욕망과 자잘한 분노로 잦은 후회를 남기는 삶이었다면, 2 갑자의 삶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흔적 없이 베풀며 살아가자. 먼저 우주로 귀의하신 테스 형의 가르침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보라색 각시붓꽃잎에 새겨진 가르침을 명심하자. 
 
[일    시] 2024년 4월 17일
 

분꽃나무
조개나물
각시붓꽃
어름덩쿨
줄딸기
모과꽃
산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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