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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마 라 톤

연습이 필요하다

by 桃溪도계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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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한다. 삶이든 마라톤이든 쉽지 않음을 방증하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맞는 말도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생은 연습을 할 수가 없을뿐더러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마라톤은 연습을 하지 않고는 그 문턱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며칠간 기승을 부리던 맹추위가 다소 느긋해진 틈을 골라 오랜만에 양재천을 달린다. 새해 들어 처음 맞춰 보는 걸음이라 어딘가  모르게 어색해진 느낌이다. 나이를 쌓아 갈수록 걸음이 무뎌지는 느낌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힘든 달리기가 부담은 되지만 아직 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탄천에 무리를 이루고 있던 물닭들이 몇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환경이 맞지 않아 자리를 뜬 것인지. 아니면 추위를 피해 잠시 피난을 간 것일까. 힘들게 달릴 때마다 잠깐의 위로가 되었던 까만 물닭들이 보이지 않으니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다. 청담대교 교각 밑에는 가마우지 떼들이 옹기종기 나란히 앉아 있다. 이놈들은 겨울만 되면 여기서 월동하는가 보다. 인간과 새들이 같은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의미 일 것이다. 

 

한강에 살얼음이 가볍게 얼었다. 겨울이 되어도 한강에 얼음이 얼지 않으면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든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나 싶기도 하고, 한강 물이 오염되어서 빙점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인가 염려되기도 한다. 겨울에 한강에 얼음이 얼면, 아직은 지구 환경이 견딜만하구나 싶어 안도감이 생긴다. 이왕 얼음이 얼 거면 꽁꽁 얼었으면 좋겠다. 얼음이 있어서 먹이활동이 불편한 탓일까. 계절을 가리지 않고 한강을 자유롭게 날던 하얀 갈매기가 몇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영동대교 지나면서부터 허벅지 근육에 경련이 온다. 연습이 부족한 탓이다. 멈출까 말까 깊어지는 고민을 가볍게 안고 속도를 늦춰보니 경련이 다소 누그러진다. 마라톤을 시작하고부터 아직 중도에 포기해 본 적은 없다. 경련이 생길 때마다 걸으면서 고통을 달래서라도 끝까지 달렸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나는 언젠가는 주로에서 주저앉을 날이 올 것임을 안다. 그날이 오면 세상 다 포기해 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땅바닥에 엎드려 펑펑 울어버릴 것이다. 

 

반환점을 되돌아오는 길. 경련이 있기는 해도 견딜만하다. 연습이 부족했던 자신의 상태를 너무나 잘 알기에 이만큼 달릴 수 있음은 행복이다. 조금 더 편안한 마라톤 인생을 위하여 연습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인생도 연습이 있으면 좋겠다. 부족하면 연습으로 채우고, 넘치면 덜어내면서 가볍게 살아갈 수 있으니 효율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인생에 연습이 없다는 게 다행이기도 하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일    시]  2024년 1월 28일

[장    소] 양재천 일원

[기    록] 1시간 58분(20.5km)

 

청담대교 가무우지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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