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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隨筆, 散文

諸行無常 제행무상

by 桃溪도계 202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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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에게]
 
친구!
당신 마음속에 울고 있는 자신을 본 적이 있는가. 자네는 그런 적이 없을 것이라고 감히 단정한다. 거울 속에서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전부라 생각하고, 자신에 대한 가치를 업신여겼다고 가정한다. 진정한 당신의 가치는 당신 내면에 잠재된 에너지임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평정심을 가지고 잘 지내는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를 살필 줄 알아야 진솔한 자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자네는 심한 우울감에 행복의 매듭도 슬픔이라고 단정해 버린다. 결국, 삶은 우울한 것이어서 태우면 재만 남는다고 생각한다. 삶을 영위해야 할 가치를 폄훼하고 집착할 이유를 찾지 못할뿐더러 구차하게 찾을 생각도 않는다. 우울감이라는 게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지만, 자네에게 찾아온 손님인 것은 분명하다. 손님 대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손님을 왜 대접해야 하는지를 반목하며 비 오는 날 빨랫줄에 널린 빨래처럼 지친 일상에 힘들어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세상 모든 일의 인과 관계는 자신의 탓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자네는 어쩌면 자신의 탓보다는 세상 탓으로 돌리는 습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탓임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자네가 쳐놓은 우울감의 울타리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칫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꼭 한 번 체크해 보라고 권유해 보고 싶은 충고다. 세상 모든 일은 내 탓이다. 그것의 결과는 좋든 나쁘든 가리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소중한 충고를 한다면, 자신을 천하만큼 귀하게 생각하고, 천하만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자기에 대한 존엄감을 공고히 해야 할 것이다. 죽고 사는 일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내재화된 가장 크고 원초적이며 가장 자연적인 사건이다. 이 경이로운 자연의 질서를 인위적인 환경이나 자신만이 설계한 가치로 재단하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반 자연적이며 우리에게 내재적으로 부여된 진정한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왜 사느냐고 묻지 마라. 그냥 사니까 살뿐이다. 우리는 권력도 명예도 돈도 없으니까 세상살이가 얼마나 편한가. 산에 올라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막걸리 한 잔 마셔도, 길거리에서 품위 없이 어묵을 쩝쩝거리며 먹어도, 가끔은 술에 취해 전봇대를 잡고 비틀거려도 우리 삶에 큰 장애가 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이만한 다행히 어디 있겠는가. 고귀한 삶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 어떤 누구라도 자기 삶을 숭고하게 살아갈 뿐이다. 내 삶의 가치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자존임을 명심하자.
 
삶은 거룩하다. 이 거룩함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자네가 서 있는 그 자리가 거룩함의 원초적 토양이다. 나 자신의 가치는 외부의 영향에 의해 평가되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 각성하는 힘에서 생기는 것이다. 내가 만들고 다듬은 가치가 보편적인 가치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세상에 비교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나 석가모니도 비교에서 절대 우위에 있을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상대적인 비교에서 우열을 나눠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니까 내 삶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거룩한 사명이며 나름대로 살아갈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J
당신은 일반 명사가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고유명사다. 우리 스스로가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유일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 실천적 행동으로 운동과 봉사활동을 권유한다. 운동은 자네의 의지로 잘 극복해내고 있으니까 칭찬할 만하다. 봉사활동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음을 안다. 그까짓 봉사활동은 해서 뭐 하나. 어차피 삶은 재만 남기게 될 텐데. 하지만 당신에게 봉사활동은 자신의 잠재된 내면을 꿰뚫어 살 필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임을 확신한다. 부디 힘내서 실천하기를 권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늙어가고 죽을 것이다. 그것은 진리다. 그러므로 진리의 리듬에 굳이 엇박자를 놓겠다는 것은 자연에서 부여받은 사명을 역행하는 자기모순이다. 오늘 나를 누르고 있는 괴로움 역시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이 괴로움도 진리의 궤도를 따라 변해갈 것이다. 이를 일러 불교에서는 諸行無常이라 하였으니 가슴에 새겨두자.
 
내가 자네를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장황한 필설로 두서없이 내까려서 언짢아할지도 모르겠지만, 무슨 말을 해도 무릎을 탁 치고 깨닫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내 마음 편하자고 이렇게라도 사랑을 담아 남기는 것이니 불편하고 거슬리더라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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