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아름다운 동행
記 行

이작도

by 桃溪도계 2023. 6. 12.
반응형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어 가는 의미가 된다. 내 마음 하나 들어내어  친구 마음에 점 하나를 찍으면 화선지에 먹물이 번져 그림이 되듯 아름다움이 된다. 
 
바이러스가 통제하던 시절에 서로 안부 묻기도 두려웠었는데, 이제는 마음을 열어 마음껏 안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 눈치 저 눈치 살피지 않고 마음만 모으면 되는 일인데도 쉽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어디서 만나 무슨 수다를 떨어야 밴댕이 속 훑어 내듯 깔끔하게 회포를 풀어낼 수 있을까.
 
궁리 끝에 인천 앞바다에 덤성덤성 떠 있는 섬 자리 하나 묶어 볼모로 잡고 하소연을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이작도를 간택하였는바, 까닭을 알리 없던 이작도는 덥석 미끼를 물었다. 비가 오느니 바람이 부느니 앙탈을 부려댔지만 우리를 뿌리치지는 못했다. 
 
코리아 스타 호 배가 '부웅' 기적을 울리며 미끄러지듯 출발한다. 그동안 섬 여행을 준비하느라 설레었던 마음이 콩닥거린다. 이작도는 자랑할 만한 명승지가 있거나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은 아니다. 해변 모래사장, 바다, 산으로 이루어진 담백한 섬이다. 특별히 자랑할 것은 없지만, 배를 타고 육지와 멀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국적인 연출을 한다. 대 이작도 항에 내려 펜션에서 안내하는 트럭 짐칸을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재미도 그런대로 괜찮은 맛이다.
 
이작도에는 이백팔십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펜션이나 식당을 열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생계를 이어 나간다. 이작도에 닿으면 싱싱한 회 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고깃배가 보이지 않는다. 자월초등학교 이작분교와 계남분교 2개가 있는데 이작분교에는 현재 13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고, 계남분교는 폐교된 지 꽤 된 듯하다. 하지만 계남분교는 예전에 '섬마을 선생님' 영화 촬영지여서 낡은 폐교 건물에 나름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던 차에 지자체에서 복원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 한다.
 
친구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작은 풀 등 해안, 큰 풀 등 해안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돈다. 바쁠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는, 시간이 정지된 바다에서 우리들의 수다는 풍경이 된다. 섬은 이것저것 내놓고 꾸미거나 자랑할 일이 없다. 섬의 운명은 풍경과 휴식이었다. 바다 바람을 가만히 맞으면서 가슴을 열기만 하면 힐링이 되는 까닭이다. 
 
밤이 되어 조용한 섬에 술을 들이부으니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비틀거리며 떠들어댄다. 낮에는 나름 고상한 척 사부작사부작 섬 트레킹을 즐겼는데, 이작도의 밤은 유별났다.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을 것이다. 특히 조용하게 섬의 낭만을 즐기고자 했던 사람들에게는 송구한 마음이다. 그들은 우리들의 소통 방법을 어떻게 이해할까. 찌푸린 마음을 펴지 못하고 섬을 떠난다면 다시 돌아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튿날 아침 일찍 부아산 정상에 올랐다. 이작도를 중심으로 주변 섬들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인데, 해무가 있어 자월도는 보이지 않고 승봉도는 흐릿하게 렌즈에 잡힌다. 어젯밤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풀등을 가리키며 고래를 닮았다고 능청을 떨어본다. 풀등에 올라서서 이작도를 바라보는 곳에 해변이 펼쳐져 있다. 그의 이름은 작은 풀 안, 큰 풀 안 해변이다. 
 
다시 인천항으로 돌아오는 길. 1박 2일 동안 친구들과 마음의 물이 제대로 들었을지 장담하지 못하겠다. 행여, 마음이 불편한 친구들이 있거든 그냥 편하게 내려놓으시게. 친구라는 이름으로 뭉개 버려도 상처가 생기지 않는 까닭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함께 손 잡고 걷다 보면 없던 정도 생길 것이니, 아웅다웅 즐겁게 살자꾸나. 
 
[일      시] 2023년 6월 10 ~11일(1박)
[장      소]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 이작도
 

갯매꽃
해당화
인동초
풀등
산부추

 

지칭개
산딸나무
승봉도
초롱꽃

728x90

'記 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기행(1일차) 금각사(킨카쿠지)  (3) 2023.07.16
일본기행(1일차) - 교토 가는 길  (3) 2023.07.15
봉정암  (17) 2023.06.06
인생은 꽝이다  (24) 2023.05.30
가덕도 외양포  (19) 2023.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