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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記 行

인생은 꽝이다

by 桃溪도계 2023.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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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락가락 하지만 일기를 핑계로 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아들이 낚시 함께 하자며 제의한 지가 족히 삼 년은 된 듯하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마음을 정하고 나니 기다리는 시간이 조급해졌다. 비 맞을 채비를 단단히 하고 새벽을 달려 인천 연안부두에 다다랐다. 새벽 세시 좀 넘은 시간인데 낚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분주하다. 
 
낚시를 자주 가는 편이 아니라 낚싯대를 비롯해 장비라고는 하나도 없다. 가게에서 빌려주는 낚싯대를 준비하고, 미끼와 이런저런 도구들을 갖춰서 출정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마음은 만선이다. 돌아오는 배가 고기로 가득 차서 기우뚱거리면 어떻게 할지 흐뭇하게 고민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깜깜한 새벽 연안부두에 정박했던 배가 시동을 켜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등대 불빛이 유난히 붉은 아침에 비가 사부작거리며 내린다. 비를 맞으며 항해하는 바다의 새벽은 생각보다 춥다. 종일 비 맞을 생각을 하니 은근히 걱정도 된다. 다행히 오후에는 게인다는 예보가 있어 안심이다. 빗방울이 옷에 젖지만 두렵지는 않다. 일렁이는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표표히 떨어지는 비에도 바다는 태연하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안부두에서 한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에서 기대를 잔뜩 품은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운다. 바닷속 물살이 세지는 않다. 함께 배를 탄 꾼들이 대상 어종인 광어의 심리를 장황하게 펼쳐 놓는다. 낚싯대를 내리고 들기를 수십 번 했지만 입질이 없다. 슬슬 지겨워지는 시간에 함께 탔던 꾼들이 광어를 하나 둘 잡아낸다. 광어가 끝물이라 입질이 활발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조황이 좋지 않다.
 
빈 낚싯대를 들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허리는 아프고 마음의 동요도 깊어진다. 이 넓은 바다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작은 미끼 하나 달고 고기를 꾀여 낸다는 게 무모하다는 생각이다. 인간은 잘난 척 하지만 무지몽매하다. 다행히 비는 멈춰서 불편하지 않는데 입질이 없으니 술이 당긴다. 
 
아들은 멀미 기운이 있어서 선실에 들어가 누웠다. 체면치레는 해야겠는데 조과가 없으니 초조하기만 하다. 그때 작은 입질을 느껴 재빠르게 챘다. 큰 힘 들이지 않고도 달려오는 것을 보니 작은 것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손바닥만 한 장대 한 마리 달랑거린다. 그 후로도 입질이 없다가 다시 한번 챔질을 했더니 아까 크기 만한 장대다. 대상어종이 광어인데 장대를 잡았으니 잡어다. 
 
오후에도 입질은 없다. 꾼들은 간간이 실력을 발휘한다. 7자짜리 광어를 들어 올린 사람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승리자의 여유를 즐긴다. 조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두세 마리 잡은 사람들도 있다. 아들은 첫 출조에 기대를 많이 했을 텐데, 실망감이 길어질 때쯤 제법 손 맛이 느껴지는 우럭 한 마리 걸었다. 인생 첫 고기를 잡은 기분을 어떻게 저장했을지 모르겠지만 명분치레는 했다. 
 
낚싯배가 떠나 온 부두로 돌아갈 시간. 내 손에 담긴 것은 딸랑 장대 두 마리. 살려 줄까 하다가 사무장한테 알아서 처분하라고 넘겨줬다. 기대감을 품고 마음을 졸이며 하루 종일 애썼는데 조과는 꽝이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물살을 가르는 뱃 뒷전에 갈매기가 속도 모르고 까악거리며 따라붙는다. 인생은 어차피 빈 손이다. 어쭙잖게 잡아서 처리를 고민하기보다는 차라리 빈손이 홀가분한지도 모르겠다.
 
함께했던 꾼 아저씨 한 분이 우리 부자에게 광어 한 마리 준다. 사무장도 자기가 잡은 광어와 우럭을 회 떠먹으라고 건네준다. 홀가분했던 마음에 근심이 생긴다. 이 놈을 어떻게 회를 뜨고 처리를 하지. 빈 손이었을 때가 더 가뿐했지만, 욕망은 일단 덥석 잡고 본다.
 
로또도 당첨되는 것보다 꽝이 더 익숙하다. 우리 삶도 꽝을 더 많이 닮아 있는데, 사람들은 더 많이 가져 행복을 챙기려다  갖은 상처를 남긴다.  
 
[일     시] 2023년 5월 29일
[장     소] 인천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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