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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 散文

伐草 短想 벌초 단상

by 桃溪도계 2022.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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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의 산소를 돌보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십 년 전만 해도 산소를 정성스럽고 멋지게 꾸미는 일은 자손으로서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장묘 문화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요즘에는 아예 산소를 만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주 드물게 매장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분골 단지를 묻고는 간단하게 마무리한다.

그러고 보면 장묘 문화는 그 시대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대변하는 문화적 표현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석묘가 유행하던 시기에는 그 당시 부족을 리더 할 수 있는 통치 수단이었으며, 전쟁을 하고 역사가 기록되던 시기에는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진시황 묘가 그랬고 경주나 부여의 여러 고분군이 그랬다. 조선 시대에는 유교라는 이념을 통치기반으로 하였으므로 예를 갖추는 수단으로써 능에 대한 관리가 엄격하였다. 국가 통치 기본가치가 유교적 이념이었으므로 일반인들도 조상의 묘를 섬기는 데 있어 가문의 명예를 걸었다. 그런데 근대를 지나 현대에서도 조선시대의 매장문화 풍습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다가 최근 들어 급격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만큼 우리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시간을 다투며 변화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양상으로 변화해 간다면 앞으로 이삼십 년 후에는 납골당이나 분골 무덤도 사라질 것이다. 화장 끝나면 바로 자연에 흩어버리는 방향으로 정착하지 않을까 싶다.
조상님의 신체를 소중하게 여겨 정성껏 모셔야만 내세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었는데, 세상의 급격한 변화는 그 가치를 상쇄해 가고 있어 현세를 중하게 여기는 요즘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화장을 해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간단하고 더 편리하게 여겨지면서 장묘 문화는 일대 혁신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수 천년 전부터 불교에서는 화장을 하여 흔적을 지워버렸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국가의 에너지를 총동원하여 능을 만들고 관리했던 일들은 내세와 아무 관련이 없었으며 권력 유지를 위한 통치 수단에 불과했다고 정의할 수 있다.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래 장묘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개인적으로는 내가 살았던 흔적 자체를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지워버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부모님께서는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셨고, 나는 세상에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부모님께 기쁨을 드려 보답을 다했다. 그러니 세상을 살고 간 흔적을 남겨서 뭣하랴.

종래에는 장묘가 필요 없는 문화로 정착될 것이므로 벌초는 아예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별하는 순간 살아있는 사람이 문제다. 그래서 이별의 시간을 유연하게 극복하기 위해서 얼마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납골당이나 분골 묘가 당분간은 존재할 것이다. 벌초 문화의 마지막 단계는 분골 묘의 작은 잔디밭이 아닐까.

[일 시] 2022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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