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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방태산

by 桃溪도계 2022.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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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단풍]

 

꽃이 피면 시들어 가지만 그것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이다.

단풍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것은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변태 과정이다.

 

방태산의 여름 꽃들이 지천으로 피고 지고 치열한 삶의 매무새를 여며간다. 피는 꽃은 아름답지만 지는 꽃은 왠지 초리 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두려움이나 동정은 필요치 않다. 그의 가슴에는 소중한 생명이 자라고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오래전 이 계절에 방태산을 다녀온 기억이 있다. 흐릿한 기억 속에 가파른 산세에 힘들었던 기억만 아스라이 남아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로 방태산과의 인연을 피했던 사실을 고백한다. 하지만 인생의 행로가 제맘대로 되는 일이 있던가. 전 날 아침가리골 계곡 트레킹을 예약했었는데 산악회에서 성원이 되지 않아 부득이 방태산으로 바꿀 것을 권한다. 야단스럽게 부산 떨 일이 아니어서 계획에도 없던 방태산 산행길에 오른다. 

 

방태산 자연휴양림 들머리 길이 평탄하게 이어져서 예전 기억에 있던 그 길이 아닌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친구와 함께 걷고 있는데 한참을 걸어도 가파른 등로가 나타나지 않으니 오히려 불안하다. 정상 주억봉까지 2km 도 남지 않은 지점까지 평탄한 등로가 이어지다가 사다리 같은 가파른 계단 길이 나타난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가파른 등로를 오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힘든 일이다. 땀에 흠뻑 젖은 길이 헉헉대며 혀를 내두른다. 마음 같아서는 단번에 오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중간중간 길을 세워서 호흡을 고르지 않고는 올라갈 수가 없다. 역시 방태산 너였구나.

 

산 길은 숲이 우거져서 햇볕의 예리함이 완벽하게 차단되는 그늘 길이다. 마침 흐린 날이어서 더욱 그렇다. 힘든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구름이 자욱한 능선 길이다. 능선 길에는 성성한 나뭇잎들이 하늘을 가려 인간계와 선계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기개가 넘치는 나뭇잎들도 서너 달만 지나면 아름답게 퇴색해 갈 것이다. 그때는 인간계와 선계의 경계가 열리고 비로소 나는 선인의 문을 두드릴 수도 있지 않을까. 힘든 산행길에 흠뻑 젖은 땀을 훔치면서 객쩍은 상상을 하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다.

 

방태산의 꽃과 나뭇잎

그들의 길에서 이정표는 서로 달라도 궁극의 목적지는 아름다움이다.

꽃은 새로운 우주를 생산하는 아름다운 길을 가는 것이고, 나뭇잎은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태워 가을이면 단풍으로 변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짐으로써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아름다운 길을 가는 것이다.

 

[산행 일시] 2022년 7월 9일

[산행 경로] 방태산 자연휴양림 - 주억봉 - 구룡덕봉 - 매봉령 - 방태산 자연휴양림(14.5km)

[산행 시간] 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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