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리 꽃]
흔히 만나는 꽃일지라도 산길에서 만나면 더욱 정겹다.
산길에서 자주 만나는 꽃들은 으레 껏 그러려니 흘려 지나기 일쑤지만 꽃을 볼 때마다 또 하나의 작은 우주를 만나는 기쁨은 소소한 행복이다.
삼각산 비봉능선길에서 만난 으아리 꽃은 이름이 생경스럽기는 하지만 가느다란 연녹색 줄기에 하얀 꽃잎을 달고 바람에 하늘거리다가 마주치면, 수줍은 버선발을 사뿐히 들고 뒷걸음질 치는 그의 모습에 나는 발걸음을 뚝 멈추고 '으아' 하고 작은 탄성을 짓고는 땀을 훔친다.
소나무 그늘 밑에 하얀 꽃잎을 가지런히 배열하고 산객을 기다리는 마음이 곱다 못해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예전 시골집 대청마루에 할머니께서 하얀 모시적삼을 곱게 차려입으시고 손부채를 들고 더위를 살랑살랑 부쳐대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찌하여 으아리 하얀 꽃잎은 할머니의 하얀 모시적삼을 닮았을까.
비봉능선길 마디마디마다 으아리 꽃이 흩뿌려지듯 피어있다. 가뭄이 길어 힘들 텐데 꽃잎을 피워내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으랴. 한평생 묵묵히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세월을 지켜오신 할머니의 모시적삼 작은 올마다 뿌리를 내리고 하얀 꽃을 피워냈으니 이 아름다움을 어찌 말로 지어낼 수가 있으랴. 가슴에 절절히 맺히는 하얀 그리움 같은 으아리 꽃이여.
으아리 꽃 넝쿨 바로 옆에 꿩의다리 이파리가 가뭄에 지쳐 풀이 죽어간다. 이대로 두면 영영 이별이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에 생수를 꺼내 물을 주고는 한 나절만 버텨라 되뇐다. 밤에 이슬이 내리면 가는 목을 축이고 조금만 더 기운을 내면 비를 만날 수도 있으니까 절대로 속단하지 말고 힘내기를 바란다. 으아리 꽃이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 당신이 지고 나면 꿩의다리 꽃이 영롱한 보라색을 피워내어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
할머니 맞지요.
그렇게 살아가면 되지요.
[산행 일시] 2022년 5월 29일
[산행 경로] 불광역 - 장미공원 - 탕춘대 능선 - 비봉 - 문수봉 - 대남문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13.3km)
[산행 시간] 5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