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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삼각산 초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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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봄이 막 시작될 무렵 삼각산 비봉능선 길을 걷다가 문수봉 암벽 밑에서 30년 전에 함께 근무했던 직장선배를 만난 적 있다. 나보다 열 살은 더 많은 선배인데 30년이 지났어도 젊었을 때 봤던 그 단단한 외모가 전혀 변하지 않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어서 신기할 정도다. 외모에 풍기는 인상은 아직 오십 대 후반쯤으로 보여서 건강관리를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선배는 건강뿐만 아니라 자기 관리도 워낙 잘하는 분이어서 절대 무리하지 아니하고, 욕심부리지 않는 타입이어서 남들보다 빨리 진급하지 않아도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자기 일 성실하게 하시던 분이었다.

오랜만에 준비 없이 산 길에서 만나서 그간의 안부를 잠깐 여쭤보고 전화번호 교환하고 헤어져 문자 안부 서로 통하고는 다시 연락할 일이 없다. 살아온 환경에서 서로 접점을 찾을 수 없으니 만나는 순간 반갑기는 해도 안부를 이어 갈 거리가 생기지 않으니 삶에서 동행의 이론은 이런가 싶다.

 

지난 일요일, 역시 비봉능선을 걷다가 느긋하게 산길을 걷는 앞서가는 부부를 발견하고는 눈길을 멈췄다. 조선일보 마라톤 셔츠를 입었으니 눈길을 피해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나 역시 똑같은 셔츠가 있으니 동질의식이 있어서 은연중에 반가움을 느낀다. 뒤에서 보니 훤칠한 키에 허리가 좀 굽어있고 어깨가 좌측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어서 육십 대 후반쯤 느껴졌다. 반면 부인은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다부진 느낌이다. 단란해 보이는 모습이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신록이 푸른 계절에 산으로 나들이 나왔으니 얼마나 건강하고 복 된 시간인가.

마냥 뒤따라 갈수만 없어서 질러가려는데 '어이쿠' 깜짝 놀랐다. 마라톤을 함께하는 구사장님이다. 아니 이게 웬일이여.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만나서 마라톤 연습하며 지내는 사이인데 예고 없이 산에서 만나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볼 때마다 앞에서만 봐오던 터라 뒷모습을 정성껏 바라볼 일이 없었는데 앞모습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같은 점은 앞모습이나 뒷모습 모두 구사장님 특유의 진지한 모습이다. 구사장님께서 평생 살아오신 소신이 아닐까. 사모님께서는 잠깐 건강이 흔들렸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 너무 좋다. 이렇게 큰 산을 다닐 수 있으니 더 멋져 보인다.

 

함께 산행하기로 한 친구는 자기가 속해있는 산악회에서 5월 말경에 설악산 공룡능선에 도전하기로 했다. 나는 지리산 무박 종주를 계획하고 있어서 연습 삼아 북한산, 도봉산을 연이어서 탈 계획이었는데, 친구가 급한 일이 생겨서 오지 못하고 함께 산행하기로 한 친구의 산악회 여성회원분 한 명이랑 둘이서 산행을 하게 되었는데 조금은 어색하다. 예전에 몇 번 산행을 함께 한 적은 있지만 단 둘이 산행을 한 적이 없어서 조금은 서먹하고 왠지 멋쩍다. 이런 환경에서 구사장님을 만나자마자 서먹한 분위기를 설명하기도 그렇고, 굳이 설명할 이유도 없어서 어색하게 길을 달리했다. 나는 친구가 없어서 당초 계획처럼 길게 산행을 하지 않고 문수봉을 지나 대남문에서 북한산성입구로 하산했다. 다음에도 오늘 함께했던 여성회원분이랑 단 둘이 산행하면 어떤 기분일까. 자꾸 마음이 쓰인다. 산 다니는 사람들이 어딘들 안 가겠냐만은 가다 보면 함께 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없던 연정도 생길지 아나. 길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인생길 알 수 없는 길이다.

어제의 길과 오늘의 길, 그리고 내일의 길.

같은 길인데 그 길에서 사람이 바뀐다면 그 길은 같은 길일까.

길은 무대일 뿐이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의 생각과 철학에 따라서 길의 성격도 달라진다. 물론 시나리오나 연기에 따라서도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될 것이다. 

길은 연출하기 나름이다.

행복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꾸며갈 수 있으면 최선의 길일 것이다.

 

 

[산행 일시] 2022년 5월 8일

[산행 경로] 불광역 - 장미공원 - 탕춘대 능선 - 비봉 - 문수봉 - 대남문 - 북한산성 입구(13km)

[산행 시간] 4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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