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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라 톤

마라톤은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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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추위가 닥쳐 수양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렸다.

섣불리 물을 올리지 말라는 신호다.

다른 친구들이 준비되면 함께 올라가야 공정한 경쟁이 될 것이니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 전에 먼저 출발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꽃샘추위는 그런 의미였으리라.

 

마라톤 출발선에서 초다툼은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마라톤은 출발 반칙으로 인한 재출발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긴 거리를 달려야 하는 마라토너들은 온전히 끝까지 달리는 것이 일차 목표여서 출발선에서의 다툼은 너그러운 편이다.

 

날씨가 추워서 달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단단히 준비하고 달려보니 그런대로 달릴만하다.

탄천에 찾아든 물 병아리 떼들은 추위가 대수롭잖은가보다.

얼음장 같은 물에 두 발을 담그고 미동도 않고 기다린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물 병아리가 품은 뜻을 내가 어찌아랴.

혹시나 발이 얼었을까 싶어 다가가니 경계심 가득한 날개를 펴 일제히 날아오른다.

마라톤을 달리는 나는 달리면서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고, 너희는 가만히 앉아서 날아오를 날을 기다리는 것이었구나.

 

한강 한가운데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수천 마리의 새떼가 군집을 이루고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에 몸을 맡기고 찰랑대고 있다.

일제히 한강 하구쪽을 향해 도열해 있는 모습이다.

어느 한 놈 흐트러짐이 없는 너희들은 또 누구를 기다리는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놈들일세.

 

한남대교 턴 지점에서 친구를 만나 함께 돌아오는 길은 든든했다.

바람도 차고 다리 근육에 무리가 생겨 걸을까 생각했는데 친구가 옆에 있어서 끝까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친구야!

먼 길은 함께 가는 거야.

누가 우리를 기다리는지는 몰라도 달리는 이 순간만큼은 행복일세.

그러고 보니 굳이 기다릴 필요도 없겠다 싶다.

기다림의 목적도 행복이었을 테니까.

 

[일    시] 2022년 2월 20일

[코    스] 양재천 밀미리교 - 탄천 - 한남대교 (턴) - 양재천 밀미리교(22km)

[기    록] 2시간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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