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처음 시작한 것이 2008년이었으니 어느새 13년 차 되었다. 그동안 풀코스 완주를 40여 회 했으니 긴 시간 동안 많은 거리를 달렸다. 그러나 최근 2년간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 문제로 마라톤대회를 열지 못하고 있어 나의 마라톤도 잠시 휴식기에 접어든 상태다. 가끔은 미친 듯이 달리고 싶지만 바이러스 핑계로 발을 묶어 놓은 것은 참 다행이다 싶다. 마라톤은 나에게 영욕의 기쁨을 주기도 했지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마라톤을 함께 시작한 김기옥 님은 400회 기념 마라톤을 한다고 한다. 나보다 10배나 많은 기록을 갖게 된 것이다.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일을 개척해 나가는 투지가 부러우면서도 자신에 대한 가혹함을 염려한다. 사실 나는 일 년에 네댓 번 풀코스를 달리면서도 자신을 매정하게 괴롭히고 학대하는 것 같아 자책할 때가 종종 있었다. 가끔은 제 자신을 놔주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짠하다.
그러고 보면 마라톤에 있어서 달린 횟수를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매 번 달릴 때마다 시간 기록은 마라토너에게 자신의 능력과 현재의 상태를 가늠하는 척도다. 기록은 진실이어서 속일 수도 없을뿐더러 속여도 큰 의미가 없다. 나는 마라톤을 하면서부터 나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솔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작은 변칙에 많은 유혹을 당하지만, 마라톤은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엄격한 훈련과정을 통해서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는 명상과 같은 것이다.
다시 달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힘들어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다듬고 갈무리할 수 있는 명상으로 생각하면서 달릴 수 있기를 다짐해본다. 비록 힘들지라도 그것은 나를 위한 담금질이며, 좀 더 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찾기 위한 과정임을 인식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달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산행 일시] 2021년 12월 12일
[산행 경로] 적십자 남부혈액원 - 탄천 - 한강 - 한남대교(분기점) - 적십자 남부혈액원 (22km)
[산행 시간] 2시간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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