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마라톤도 정직이다.
그러나 축구나 야구 등 스포츠 도박을 합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구기종목이나 경마나 경륜 경기에서 벌어지는 선수 매수에 의한 승부조작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하여 정직한 스포츠인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로 인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 현실에서 스포츠는 절대 신성시되어야 하는 정직성을 상실하게 되면 게임의 존재는 가치가 무색해진다.
마라톤은 혼자 하는 경기이므로 상대적으로 다른 경기에 비해 정직한 스포츠라고 단정할 수 있다. 만약에 마라톤에도 도박이 걸린다면 부정한 일들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 단정한다. 마라토너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육체와 영혼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마라톤 경기에서 자신을 속이기란 쉽지 않다. 일반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기록 단축을 위하여 반환점을 위반하거나 주로를 벗어나 다른 속임수를 쓰는 일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마라톤은 자기 자신의 인생기록과 닮아있어 남을 속이는 일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마라톤은 규칙이 단순해 심판의 역할이 미미한 만큼 규칙을 위반할 일도 별로 없다.
마라톤 동호인들과 친목도모 겸해서 연습 경기를 하는 양재천 출발점. 각자가 턴 해야 할 지점은 자신이 정한다. 그것은 누구의 강요도 아니며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자신과의 약속 일 뿐이다. 유월의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강 변을 달리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정식 대회처럼 음수대가 마련되어 있지도 않으니 열악하지만 연습경기니까 견뎌내야 하는 사명감 같은 것이 생긴다. 나는 내가 정한 한남대교에서 턴 해야 하는데 동호대교에서 한남대교까지 가는 길이 지겹고 힘들다. 중간에서 돌아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는데 결국은 돌아가지 못했다. 내가 정한 약속을 깨기 싫었기 때문이다. 설상 걷는 한이 있더라도 나와의 약속을 정직하게 지켜내자 다짐한다. 정식 대회가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돌아와도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 힘들어서 중간에 돌아왔다고 말해도 정직성에 흉터를 남기는 일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정한 마음을 지키고 싶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정직하다. 그러나 남을 대할 때는 그를 속이려는 습성이 있다. 만약에 남을 속이게 되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수단이 된다. 결국 남을 속이는 행위가 자신을 속이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자신을 속이고 싶으면 남을 속이면 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에서 자신을 속여야 할 이유가 없는 만큼 남을 속일 이유도 없다.
세상에 자신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라톤이 그러하다.
자신이 정하고 연습한 만큼 정확하게 자신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정직한 스포츠다.
나는 마라톤을 통하여 나 자신을 속여야 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남을 속일 이유도 없음을 명징하게 새기며 다짐한다.
비록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없지만 마라톤을 거듭하면서 좀 더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연습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마라톤은 내게 그런 의미다.
[일 시] 2021년 6월 27일
[경 로] 적십자 남부혈액원 - 탄천 - 한강 - 한남대교(분기점) - 적십자 남부혈액원(22.2km)
[시 간] 2시간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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