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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삼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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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의 여름 계곡]

 

잦은 비로 계곡에는 수량이 풍부하고 작은 폭포들은 망아지들이 봄바람에 깨춤 추듯 춤사위가 제법 그럴싸하다. 북한산성 입구에서부터 계곡을 옆에 끼고 산으로 오르는 산객들의 마음도 한결 청량해진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산객들은 묵은 갈증을 풀어내듯 뻥 뚫린 가슴에 잠시 최면을 건다.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의 물줄기를 가슴에 안으니 가슴이 뜨끔해진다. 나 자신은 오만하게 살아오지 않았을까 반문해 본다. 아니 그렇다 대답할 자신이 없다. 그러니 가슴 명치끝이 아픈 것은 이미 예정된 표적이었다.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 같은 폭포의 세찬 물줄기도 활을 떠난 화살이 마지막에는 힘이 빠져 떨어지듯 언젠가는 초라한 모습으로 물줄기를 거둘 것이다. 세상의 순리가 이러하니 인간의 삶도 오만하게 살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새긴다. 젊고 힘이 있을 때는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지만 늙고 병들면 세상 모두가 두려운 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세찬 물줄기를 마음껏 뿜어낼 때 오만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초라한 모습이어도 후회는 남기지 않는다.

 

나의 삶의 궤적을 되짚어보면 그리 잘난 적도 없었으며, 아주 난망한 적도 없었다. 그저 소소하게 사업하고 아이들 키웠을 뿐 거들먹거려 본 적도 없으며, 기를 펴지 못해 찌그러진 적도 없다. 하지만 인생 종반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의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부모형제와 친구 몇이 전부다. 어차피 인간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어쩌면 나는 내가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비하면 부자일 것이다.

 

흔히 우리는 가진 것의 기준을 물질적인 가치를 척도로 한다. 그 기준의 잣대를 대면 나는 거지다.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물질적인 가치를 도외시할 수는 없다. 그러면 나는 인생 종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렇지만 그리 큰 걱정은 되지 않는 것은 물질적인 가치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크게 오만한 적이 없었으니 많은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도 자부할 만한 자산이다. 

 

비록 지금 터널 속에 있지만 두렵지 않다. 이 터널을 지나면 누구보다 더 밝은 빛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밝은 곳에서의 빛은 그 가치가 퇴색되지만 어두운 터널을 지나서 맞는 빛의 가치는 더없이 영롱하기 때문이다.

화 속에 복이 있고, 복 속에 화가 있다 했으니 인생사 행과 불행에 대하여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다.  

삶은 언제나 긍정이다.

 

[산행 일시] 2021년 6월 5일

[산행 경로] 북한산성 입구 - 대서문 - 중성문 - 대남문 - 구기동(9km)

[산행 시간] 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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