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 단상]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걸었던 구도(求道)
부처님께서는 어떤 가르침으로 중생을 구하고자 했을까. 나는 아직 불법의 깊이를 모르니까 깨달음의 가치를 말할 수는 없다. 구도(求道)의 궁극의 가치는 무엇이었을지 알 수는 없지만 무지렁이 수준에서 접근하면 단순 명료하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즉, 인간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함에 있어서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갖은 욕망을 슬기롭게 제어하고 극복하여 행복에 도달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고자 했을 것이다.
인간이 행복을 얻기 위하여 여러 가지 조건들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첫 번째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는 생명을 이어가는 모든 개체가 숙명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근본 가치다. 그런데 어떻게 배고픔을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종교가 그렇지만 부처님의 가르침 역시 배고픔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제시하지 못한다. 만약 그런 가르침이 존재했다면 인류의 생존과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을 것이다.
내일 아침 때거리만 있으면 발뻗고 잔다는 말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사방공사를 가시면 노역의 대가로 미국 원조 밀가루를 배급받았다. 누런 종이 밀가루 포대가 아닌 하얀 천으로 된 세련된 밀가루 포대에는 미국 국기가 새겨진 손과 우리나라 태극기가 새겨진 손이 악수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소작농의 가을 추수가 끝났지만 소작료 지불하고, 원금보다 더 무서운 쌀 장리 이자 지불하고 나면 집에 들여놓을 양식이 변변찮던 시절에 미국 원조 밀가루 대여섯 포대 윗목에 쌓아 놓고 겨우내 칼국수와 수제비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세상의 두려움을 잘 알지 못하던 유년기의 삶에도 행복의 기준은 배고픔의 해결이었다. 행복했던 기억이 잔상으로 남아있는 그때를 회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배가 든든해진다.
산 길을 다니면서 가끔 아버지를 떠올린다. 열 살쯤 되었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산에 땔나무를 하러 다녔다. 추운 날씨를 방어해 낼 만한 대책이 변변찮았다. 밑이 닳은 검정고무신, 엄마가 털실로 짜준 셔츠, 계절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흐름한 바지가 전부였다. 모자나 세련된 귀마개도 없이 산에 올라 꽁꽁 언 손으로 나뭇가지 몇 개 낫으로 베어서 아버지와 나무 짝을 만들고, 각시 베개만 한 나뭇짐을 하나 만들어 제 몫으로 지게에 지어주면 끙끙거리며 지고 내려온다. 바람이 휙 불면 자빠지고, 살얼음이 살짝 언 길에서는 미끄러져 꼬라 박기 일쑤였다. 그 시절 나의 행복은 얼른 산을 내려와 소죽 솥에 불을 지펴 몸을 녹이는 일이었다. 그때는 하기 싫은 소죽 끓이는 일도 행복이었다.
인간이 추구하는 구도(求道)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인간의 행복은 의식주를 해결하는데서 비롯된다. 요즘 세상은 의식주 해결에 대한 절박감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의식주에서 행복의 근원을 찾는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살 집을 장만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사회문제 중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의식주만 어느정도 해결되면 행복의 90%는 갖추는 셈이 될 것이다. 문제는 채우지 못한 나머지 행복지수의 10%를 불행하게 의식하게 된 세상이 안쓰럽다.
부처님은 인간의 행복요소 중에서 의식주를 제외한 나머지 행복지수의 10%에 대한 가르침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그 가르침이 수천년 동안 인간생활양식의 고뇌를 대변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을 구할 수 있는 근본은 배고픔의 해결이라는 점을 반추해보면 우리는 제법 사치를 부리며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는 아직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해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세상 어디에도 배고픔을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는 구도(求道)는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은 얻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다. 배고픔을 해결하고도 갈증이 있으면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행복은 물리적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은 것에서도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면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거듭 말하건대 행복은 물적인 가치가 아니라 감성적인 가치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슴에 행복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어떻게 키울 것인가는 자신이 마음먹기 달렸다.
[산행 일시] 2021년 5월 19일
[산행 경로] 불광중학교 - 향로봉 - 비봉 - 사모바위 - 승가봉 - 문수봉 - 행궁지입구 - 중성문 - 대서문 - 산성입구
(10.5km)
[산행 시간] 3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