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해져 가는 삶의 시간들을 꿰어내어 적당하게 긴장을 주고 허전해져 가는 우정을 달래려고 한 달에 한 번 산행을 하자고 약속한 친구들의 시간. 한 달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은 변함이 없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우정을 인터뷰하는 심리적인 시간은 더뎌지는 느낌이라 많이 기다려진다.
작년에 여주에 새롭게 둥지를 턴 상은이 집에서 집들이 겸해서 시간을 갖기로 하고 들뜬 마음을 자동차에 싣고 도착한 곳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은 세상에서 가장 큰 가지밭을 질서 있게 줄 세우고 중간중간에 호박 농장들을 끼워 넣어 감성적인 여백을 스케치하고 있다. 최근에 도회지 사람들이 마을 자투리 자락에 전원주택 단지를 형성하여 도농 간 상호 호의 로운 감정을 교류하는 풍경이다.
육십 댓돌위에 올라 선 친구들 대부분이 동경하지만 선뜻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던 전원생활. 상은이 친구가 먼저 선봉에 섰으니 그의 생활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를 통하여 선뜻 내놓기가 멋쩍었던 막연한 내일을 투영해 보고 싶었던 마음이다.
모내기 끝난 무논에는 개구리들이 밤새도록 목청을 돋우고, 밤하늘에는 반세기 전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 북두칠성이 가리키는 북극성을 찾아내는 재미도 솔솔 하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은 취기가 거나해질 때까지 혀가 꼬부라져도 술이 취하지 않는다고 우겨대며 여주의 밤을 채운다. 타지에서의 목가의 시간은 날이 밝기도 전에 뻐꾸기가 꼬리에 힘주어 '뻐꾹뻐꾹' 온 동네를 뒤집으며 새벽을 깨운다.
남한강이 도도히 흐르는 여주에서의 시간도 인위적으로 가공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도 의도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남한강의 물이 말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우리의 시간도 이것저것 재지 않고 흘러갈 뿐이다. 우리는 때에 맞춰 그 세월에 탑승하여 조잘조잘 대며 깔깔깔 배꼽을 비틀어 볼 뿐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우정을 채우는 시간만큼은 세월도 잠시 멈춰준다. 친구들이 안전하게 탑승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준다.
[ 일 시] 2021년 5월 22일(1박 2일]
[ 장 소] 여주 남한강, 신륵사, 세종/효종 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