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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 行

굴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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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를 본 적이 있는가.

그냥 무지개 같은 것이려니 생각하고 찾아볼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굴업도는 인천에서 그리 멀리 있는 섬이 아닌데도 들어가는 길이 수월하지는 않다.

덕적도에서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 쯤은 견딜만하다.

미지의 섬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설렘을 가슴 가득 안은 체 배 안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조잘조잘 대다 보면 어느새 닿을 수 있는 섬.

 

예닐곱 집이 거주하는 섬은 농토가 넉넉지 않고 땅이 척박해 농사를 짓고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고기잡이도 예전 같잖아서 주민들 대부분은 여행객들의 발목을 잡고 민박을 운영하며 삶을 꾸려간다.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여행객들이 해외로 가지 못하다 보니 인천 연안 도서지역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섬에는 자연 방사된 사슴이 살고 있어 생태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관광객들과 눈을 마주치면 귀를 쫑긋 세우고 호기심 가득한 호흡으로 두근거리는 모습이 이국적인 낭만을 떠올리게 한다.

 

테스 형!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사슴은 또 왜 나와 눈을 마주치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에게 호기심을 보내는가?

 

테스 형!

여기서 친구들과 부랄 만지며 시시덕거리며 놀아도 되는 거야?

나이를 먹어도 눈치 보지 않고 혀 끝에 욕을 묻혀 씰데 없는 소리를 막 해대도 괜찮은 거야?

일기가 고르지 못해 하루를 더 묶는 동안 종일 술에 취해서 비틀거려도 괜찮아요?

인생 그냥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건가요?

 

파라다이스는 현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파라다이스는 습자지에 먹물이 베이듯 추억에 베여 있을 뿐,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신기루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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