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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지리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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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아들과 함께 지리 종주에 들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다.

뜻밖의 기회.

막내가 선뜻 마음을 낸 것이다.

평소에 산을 싫어하는 아들이었는데 아버지 마음을 읽었을까.

그렇게 삼부자는 의기투합하여 지리산에 들었다.

만만하지 않는 산행에 막내는 많이 힘들어했다.

평소 산을 왠만큼 오른 사람들도 지리산 종주는 쉽지 않은 도전인데,

산이라면 얼쩡거리기도 싫어하는 막내는 무사히 이 길을 마무리 할 수 있을까.

함께 산행 하는 사람들이 아들과 함께 산행하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칭찬을 늘어 놓을 때마다 한결 기운을 북돋울 수 있었음은 다행이다.

또 하나, 아직 혈기왕성한 젊음은 큰 위안이 된다.

이번 프로젝트를 제안한 큰 아들은 평소에 운동도 열심히하고 산행도 곧잘 이어가서 아버지로서도 큰 힘이 된다.

세석산장에 여장을 풀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면서 뜻밖의 인연을 만난 것도 산행에서 얻을 수 있는 행운이다.

막내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우기철이라 비를 피하기 쉽지 않아서 아예 비를 맞으리라 각오하고 출발한 길이었지만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았다.

반면에 산 골짜기마다 우기의 기운이 남아 운해가 펼쳐져 장대한 산맥과 어우러진 풍경을 볼 때마다 피로를 풀기에 충분했다.

밤낮이 바껴 고생하던 막내는 정상적인 사이클을 맞출 수 있는 기회였다.

저녁을 먹자마자 코를 골면서 골아 떨어지기 바빴다.

이튿날 산장의 새벽을 깨워 다시 걷는다.

여느 구도자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며 담담하게 새벽을 헤치며 걷는 동안 막내의 상태를 점검했다.

어제보다는 피로가 많이 풀린 탓인지 가벼워보여서 다행이었다.

천왕봉 오르는 길.

가파른 길에서 산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막내를 떠올려본다.

어릴 때 어린이날이나 휴일에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놀이공원 다녀 온 자랑을 늘어놓는데,

자신은 아버지 따라 산에 다녀와서 자랑 할 게 없어서 많이 서운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산을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박봉에 아이 셋을 키워야 하는 아버지 입장에서는 놀이공원을 쉽게 드나 들 수 있는 여유가 모자랐다.

그래서 길이 막히고 사람들이 많아 불편함을 핑계로 가까운 산으로 나들이를 갔었다.

천왕봉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인증샷을 마무리하고 하산 하는 길.

내심 이제는 그 서운함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겉으로는 산이 힘들고, 왜 올라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아들.

그렇지만 속 마음에 어릴 때 쌓였던 서운함 때문에 산을 꺼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번 지리산 종주를 계기로 풀어졌으면 좋겠다.

든든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리드를 해 준 큰 아들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군말없이 따라와준 막내 아들.

두 아들과 함께 한 지리산 종주여서 한없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동행한 사람들 말 처럼

착한 아들, 효자 아들, 잘 생긴 아들에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행복한 조합.

이 행복한 동행을 오래도록 기억하기를 바라며, 장쾌한 지리산의 능선을 닮은 큰 생각과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 가 주기를 바란다.
































* 일      시 : 2016년 7월 9일 - 7월 10일


* 산 행 로  : 성삼재 - 노고단 - 연하천 - 벽소령 - 세석 - 장터목 - 천왕봉 - 중산리(34.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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