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 삼신봉
지리산 삼신봉에는 두번째 산행이다.
이삼년 전에는 묵계리에서 삼신봉을 올라 상계사로 하산하였는데,
이번에는 청학동으로 올라서 삼신봉, 내삼신봉을 경유하여 삼성궁으로 하산하였다.
산행이란 뭘까..
왜 산에 오를까.
내려오면 다시 오르고,
또 내려오면 다시 오르고..
사실, 이번 산행지는 삼신봉이 아니었다.
당초에는 운두령으로 해서 보래봉을 거쳐 평창 메밀축제장으로 하산하려는 계획이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게 인생이다.
전날 보래봉 산행을 예약하고
회비까지 송금한터라 아무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당일날 아침에 혹시나 싶어 확인 전화를 했더니
인원이 초과되어서 같이 갈 수가 없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낭패가 아니다.
나 혼자면 몰라도
산 친구 한명 몫까지 내가 챙긴 상태인데, 이 일을 어쩌나..
참 당황스러웠다.
송구스럽지만 산 친구의 이해를 구하는 수 밖에..
둘이 만나서 급하게 산행지를 변경해야 한다.
이미 아침에 출발하는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산악회 차가 많지 않으리라.
삶에는
기회가 많은 듯 하지만
막상 그 기회를 담으려 하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은 어떨까.
무사하게 아무 산이나 갈 수 있기를 바랐다.
염원이 톻했을까.
지리산 삼신봉 산행에 자리가 남아 있었다.
앞뒤 재 볼 겨를없이 지리산행 차에 올랐다.
참 다행이다.
많이 서운할 뻔 했는데
이렇게나마 산에 오를 수 있었으니...
우리는 그렇게
원하지도 않았던,
오라고 하는 이도 없는
산을 올랐다.
산에 갈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산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서울에서 내려 올 때에는 하늘이 맑아서
참 멋진 산행이 되리라 예상했지만,
지리산은
절대로 인간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스케쥴대로 움질일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흐린날이다.
흐리든 말든
산에 오르면 날씨에 연연해 할 필요없다.
산에 올랐는데
흐리면 어떻고 맑으면 어떠랴.
그냥 내가 산에 있고
저 멀리에 희미하게나마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능선이 장엄하게 뻗쳐있는데..
더이상 뭘 바랄까.
장쾌한 저 능선의 기운을 가슴에 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오만함을 좀 더 덜어낼 수 있고
그 빈 가슴에 겸손을 좀 더 담을 수 있다.
그만큼 더 행복하다.
쇠통바위에 오르면서 앞서간 친구가 세상을 내려본다.
그 친구의 실루엣이 한 편의 동화를 상상하게 한다.
그는 왜 산에 올랐을까.
오늘 이 스크린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올랐을거야.
맞다...
그에게 산은 동화다.
가을인가보다.
하얀 구절초 꽃이 탐스럽게 손가락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또 한계절 접으면
내 가슴에는 어떤 언어로 새겨질까.
삶, 사랑, 건강, ...
여름이 다 가기 전에
가을이 채 오기 전에
나 자신을 좀 더 잘 이해 할 수 있는 산행이기를 바랐는데..
산을 내려오면 여전히 남는 것은 아쉬움이다.
내일 또 다시 산을 오른다해서 그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산을 오를 수 밖에 없다.
내 가슴을 채울때까지는 산에 오르리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 일 시 : 2009년 9월 6일
* 산행로 : 청학동 - 삼신봉 - 내삼신봉 - 송정굴 - 쇠통바위 - 전망대 - 삼성궁
* 산행시간 : 4시간 30분
* 위 치 : 경남 하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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