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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북한산 - 숨은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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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 숨은벽

 

여름을 채 접기도 전에 가을을 가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기분이 그런대로 괜찮다.

가슴으로 파고드는 햇살은 따갑기는 하지만 습기가 없어 눅눅하지 않아서 좋다.

아직 남았을 몇 번의 태풍과 실갱이 끝나고나면

우리는 또 한 계절을 접어야 한다.

가을이 채 정들기도 전에 겨울의 문지방을 기웃거려야 할 것이다.

 

예전의 직장 동료들이랑 가을맞이 산행에 나섰다.

무엇이 우리를 만나게 했으며,

또 우리는 무엇때문에 삶의 길목에서 헤어져 지내다가

산행을 핑계로 우정을 찾는가.

삶이 그러하다는 것을 짐작치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걸어온 발자국에 향기를 남기고 싶었고

내가 걸어가야 할 발자국에서 희망을 찾고 싶었다.

 

 

북한산 숨은벽 능선코스는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 얼마간은 편안한 능선길을 걷는 듯해서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가벼운 웃음에도 가시는 있는법.

중간쯤 올랐을 때는 만만하지가 않다.

오르다가 쉬고..

때로는 기어서 오르기를 반복하면서 삶의 질곡을 생각한다.

어떤 한 순간의 환희가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생각하며 꿋꿋하게 주어진 길을 간다.

 

한줄기 땀을 쏟아내고

산에서 다지는 우정에는 웃음이 서린다.

이 깔금한 웃음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다.

오늘이..

내일도..

마냥 웃고 싶다.

 

 

멀리 도봉산에는 자운봉이 솟아있고

그 능선을 따라 오봉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다.

어느것 하나 버릴게 없다.

버릴 이유도 없지만, 버릴수도 없다.

설령 버려진다 하더라도 아쉬움은 없다.

자연이기 때문이다.

인간도 자연을 닮을 수만 있다면,

주어진 삶에서 주어진 길을따라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길이 울퉁불퉁하다고 불평 할 필요도 없고, 아름답지 못하다고 짜증을 낼 일도 아니다.

자연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자연에 녹아들기를 바랄뿐이다.

아니다.

자연은 그마저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좌측에는 인수봉

우측에는 백운대

그 사이 우람한 근육을 드러내 놓은 바위가 숨은벽 능선이다.

멋지다.

그 말만 딱 들어맞는다.

호흡을 뚝 끊고 눈길을 돌린다.

한 번에 다 볼 수가 없다.

 

마당바위 아래로 해골바위가 누워있다.

참 기묘하게도 생겼다.

얼마전에 내린 빗물이 해골바위 눈에 고여있다.

거기서 얼마나 누워 있었으며,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누워 있으려나..

삶이란

그리 길지도 않으며, 화려하지도 않다.

바위에 화장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저 바위는 알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때때로 화장을 하고, 자신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을 버릇처럼 한다.

자기 몸 속에 들어 있을 해골을 보지 못하는 까닭일까.

 

 

 

 

숨은벽 능선에 오르기 위하여 마지막 된 호흡을 몰아쉰다.

바위틈새 산인이 잠시 햇볕을 피해 휴식을 한다.

다정한 모습에 알지 못할 질투심이 돋는다.

저 바위 밑에 사람이 없었더라면 더 멋졌을까.

아니다.

사람이 있어서 더 아름답다.

바위나 인간이나 다 자연이기 때문이다.

 

 

소나무 한 그루

바위틈에서 햇살을 담아내고 있다.

자연이 다듬고 가꾸는 분재다.

인간이 자연을 가까이 두고 싶어서 분재를 즐기는 줄 알았는데..

바위도 때로는 가까이 두고 아끼며 사랑하고 싶은 나무가 있나보다.

 오래도록 벗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견주는 나에게

소나무도 밝은 웃음을 내놓는다.

더하고 뺄 것이 없구나.

그래서 더 멋지구나. 

 

 

숨은벽 능선이 코 앞에 다가왔다.

벅찬 가슴을 주체 할 수가 없어 오히려 서운함이 서린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경이로움이다.

나는 하늘을 향해 주절주절 시부렸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입이 아니라 가슴으로 시부렸기 때문에 귀로는 들을수가 없었다.

나중에 가슴을 꺼내봐야겠다.

그 때 알면 여기에 다시 적어야겠다.

 

 

 

 

숨은벽 밑에 도착했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보듯 바위능선을 바라본다.

사람들이 자일을 타고 오른다.

우리들은 저 바위를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없다.

그냥..

여기서 감당하지 못할 감탄을 담아가는 수 밖에 더 이상 오를 수 없어서 아쉽지만,

다행이다.

저 바위꼭대기에서 바라보아도 내 자신을 보지는 못할터

고개를 숙이는 법과 겸손해야 할 이유를 배워간다.

 

 

하산하는 길에

작은 폭포에서 발을 담그고

숨은벽 산행을 정리한다.

매 번 느끼는 것이지만 산행을 하면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가볍다.

얼마나 내 삶속에서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걸까.

이렇게 훌훌 털어내지 않으면

내가 걸어가는 길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수도 있다.

그래서 산에 오른다.

 

* 일     시 : 2009년 8월 23일

 

* 산행로 : 효자 2동 - 국사당 - 사기막골 - 해골바위 - 마당바위 - 숨은벽 - 밤골 - 국사당

 

* 산행시간 : 4시간

 

* 위      치 : 경기도 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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