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농원
칠월의 따가운 땡볕에 된장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농원이라기 보다는 정원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그곳에
마음을 내리고 호흡을 길게 들이키면 천년의 향기가 가슴 가득 차오른다.
경기도 안성 땅..
삼만평의 대지위에
2,000 여개의 항아리를 반질반질하게 손질하여 전통 발효식품인 된장과 간장을 숙성시키고 있다.
농원의 주인은 된장과 간장이지만,
그들을 공해로부터 보호하고,
맛깔스럽게 잘 숙성시키기 위하여 주변에 정원을 만들었다.
연못에는 연밥이 익어가고 갖가지 꽃들이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낸다.
우리나라 먹거리의 가장 중심에 있는 된장과 간장...
그것을 만드는데 허튼 욕심이 끼어들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이 필요했나 봅니다.
이곳에서 된장과 간장을 숙성시키면..
간장속에는 연꽃 향기가 베어들고
된장속에는 욕심을 덜어버린 꿀벌의 아름다운 노동이 녹아든다.
요즘 보기드문 아주까리도 정원의 넉넉한 아름다움에 구수한 향기를 보탠다.
잠시 아주까리 나무에 바나나가 달렸으면 어땠을까...
객쩍은 상상을 해본다.
아무리 멋있게 그리려 해도 덫칠만 늘어난다.
된장이 익어가는 정원에 바나나는 어울리지 않는 상상이다.
여름꽃인 능소화와 참나리가 어울렁 더울렁 어울린다.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 위에서
지친 나는 시선을 떨구고 멍하니 세상을 본다.
거기에 당신이 있고
나는 그대에게서 참 세상을 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능소화가 피는 칠월은 그래서 내 마음을 순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쨓든 고맙고 아름다운 꽃이다.
식수대 위..
대나무 꼭지에서 물이 떨어진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물방울을 지키고 있노라면
물을 마시지 않아도 갈증이 싹 가신다.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지...
쪽박에 양껏 물을 담아서 한 모금 들이키면
세상 근심도 쭈욱 내려간다.
한동안 가슴이 텅 비어 있을것 같다.
된장과 간장을 익히고 있는 울타리에
금줄을 놓았다.
세상의 번뇌와 욕망이 범접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냥 천연덕스럽게 된장이 익어 갈 수 있도록
자연이 하는 일에 인간이 간섭하지 말란다..
귀신도 숨죽이란다.
항아리 옆..
초가와 연자매의 모습이 정겹다.
저놈들도 그냥 악세사리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닐터..
된장이 익어가면서
가끔 옛 생각이 나면 그리움에 속타지 않게
함께 동무해 주라는 배려였을 것이다.
우리를 지켜주고
역사를 이어 갈 된장을 속상하게 할 수는 없지..
잔듸가 넓게 깔린 정원에 들어서면
마음이 탁 트인다.
속좁은 마음으로는 된장을 잘 익힐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된장은 그냥 된장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이어 갈 수 있고,
잊혀진 행복을 찾아 낼 수 있는,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가는 역사다.
연밥이 실하게 익어가는 서일농원의 칠월...
그곳에서 만든 된장으로 밥을 먹으며 과거를 만나고 미래를 담는다.
그렇구나.
된장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구나.
그는 우리의 정신이었으며,
우리의 문화였으며,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자존심 이었다.
* 일 시 : 2009년 7월 26일(일)
* 위 치 : 경기도 안성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