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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거추장스러운 행복

by 桃溪도계 2007.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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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의 크기와 형태는 다르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행복이 커야만 반드시 만족감이 커지는 건 아니다. 때로는 겨자씨 같은 작은 행복에도 가슴 떨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태워서 행복을 찾는다. 수많은 고통을 감수하고 인내하며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사막에서 한 모금의 물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 절박함에 지친 사람들은 때로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렇다. 단 한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면 이 척박한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

 

   IMF 시절에 나라는 온통 혼란 속에 빠졌다. 물질적인 행복은 고사하고 정신적인 행복도 포기해야 할 정도로 황폐화 되어 가고 있을 때, 나는 작은 중소기업에 관리자로 근무하면서 고민이 쌓여가던 시절이었다.

  

   아직은 겨울의 한기를 다 지우지 못한 쌀쌀한 기운이 피부에 닿는 감촉이 싫지 않다. 출근시간 한 시간 전에 출근하여 사무실 주변과 공장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어제 일 마무리들이  내 팽개치고 간 흔적들을 따라 살피고 기숙사 주변에 담배꽁초를 줍고 비질을 한다.

  

   기숙사에는 주로 지방에서 올라 온 병력특례자들이 기거한다. 사회에 나가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돈을 벌기 위하여 취직하기 보다는 소나기를 피하기 위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처마 자락에 뛰어 들어온 아이들이다. 군 생활을 대체하는 회사생활이기 때문에 대부분 수동적이다.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감정을 쉽게 노출하는 어리석음이 뚝뚝 묻어나고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며 늦잠을 잔다. 식당에 아침식사를 준비 해 놓아도 식사는커녕 세수 할 시간이 모자라 허겁지겁 허리춤 잡고 뒤뚱거리며 출근하기 바쁘다.

  

   여느 때와 같이 회사 입구에서 비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차림이 남루하고 행복을 접어버린 얼굴에는 핏기마저도 사라진 삼십대 중반의 거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담배 한가치만 얻을 수 있습니까?”

 

    나는 그에게 담배를 내어 주었다. 불도 붙여 주었다.

     “왜 아침 일찍 공단 주변에서 방황하고 다녀요?”

    그는 어눌한 대답을 이어갔다.

   

   “식사 했어요?”

   “아니오.”

   “그럼 들어와 봐요”

 

   식당에 데리고 가서 그에게 식사를 내어 주었다. 며칠을 굶었는지 허겁지겁 끌어넣는다. 빈방 아궁이에 불 들어가듯이 웅큼웅큼 거침없이 들어간다. 세 공기를 비웠다. 트림을 하고는 다시 담배 한 대를 피운다. 그의 눈빛에 생기가 돌더니 이내 졸음을 쏟아낸다. 그를 기숙사에 데리고 가서 일단 한숨 재웠다. 온 몸이 노골노골 녹는 따뜻한 방에서 오전 내내 코를 골면서 잠을 끌어안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어 그를 깨웠다. 점심식사를 하고 샤워를 시켜서 사무실로 불렀다. 한 나절 만에 사람이 달라 보였다. 얼굴도 멀끔하게 생겼고 정신도 그리 부족해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삶에 찌 들린 흔적들이 군데군데 묻어있다. 자세히 뜯어보니 그는 환경에 의한 정신적 장애가 지워지지 않고 있어서 �기는 듯 불안하다.

  

   그는 행색만큼이나 살아온 상처들도 깊다. 엄마와 동생이 있었는데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어서 현재는 혼자다. 최근에는 시골 작은 교회 목사님의 도움으로 얼마간 몸을 의탁했지만 다툼이 있어서 뛰쳐나왔단다. 아무도 그의 삶에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그 또한 자신이랑 연결된 관계를 가진 고리가 없다. 홀로된 거지였다.

  

   그에게 공장에서 일 할 생각이 있느냐고 제의했다. 경우를 가릴 입장이 아니었다. 기숙사 방을 배치하고 작업복을 내어주었다. 속옷 두 세 벌은 사비로 제공했다. 따가운 시선들을 내가 다 끌어안고 그가 할 수 있는 적당한 파트에 배치하여 일을 하게 했다. 며칠 지나니까 얼굴에 볼 살이 붙으면서 인물이 훤해졌다.

  

   두어 달 지났을까. 그는 본성을 숨기지 못했다. 그의 급여는 통장을 만들어 별도로 관리하고 용돈 할 만큼만 그에게 주었다. 그는 그 용돈으로 막걸리를 사서 기숙사에서 취하도록 마시고는 나이 어린 직원들을 괴롭혔다. 잡음이 잦아지고 불만이 쏟아졌다. 그에게 몇 번 경고를 했다.

  

   세달 쯤 지났을까. 그동안 모아두었던 급여를 지급하고 퇴직 조치를 했다.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 거야?”

  “어디로 갈 지 모르겠습니다.”

  

   참 답답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너무 궁핍하고 초라했다. 그는 꿈을 접었다. 아예 꿈을 찾지도 못했다. 다시 사막에서 길을 읽어버렸다.

 

   “목사님께 전화해서 앞으로는 잘 하겠다고 용서를 빌어요.”

   “전화번호를 모르는데요.”

  

   그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아름다운 행복이 철철 넘치는 그런 꿈을 꾸었겠지. 지금 그에게는 딱 한 모금의 물이 필요하다. 내가 작게나마 그의 꿈을 찾아주고 싶었는데 욕심이었나 보다. 내가 품을 수 있는 울타리가 작고 초라했던 탓이다. 그는 생채기가 난 꿈을 버리고 떠났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고민하고 노력하고 인내하지만, 그에게는 꿈의 실현은 고사하고 흔해빠진 꿈을 찾지도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꿈을 쥐어주려고 애썼지만 그에게 꿈은 단물 빠진 껌 같아서 혓바닥에서 겉돈다. 그래서 그는 꿈을 자꾸 뱉어낸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안달복달 매달리는 행복 조각 같은 건 거추장스러워서 걸칠 수가 없나보다. 오히려 그에게는 너무도 몸에 꼭 맞아 자연스러워진 불행이 행복스럽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강남문학(2007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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