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상 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1912년 평북 정주 태생인 시인 백석.
그는 향토색 짙은 시어를 구사하는 월북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등장하는 나타샤는 백석 시인이 사랑했던 비운의 여인 김자야(김영한)를
의인화 한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자야는 양반가문 출신이었으나 가세가 기울자 기생을 하게 되었는데, 백석 시인을 만나서 둘이는 사랑을 하게 되었다.
백석시인이 신문사 기자생활 하던 시절 유학청년과 기생과의 연분은 6개월간의 동거생활을 끝으로 헤어졌다.
그 후 자야는 백석시인을 가슴에 품고 서울에서 대원각이라는 요정을 운영하였다.
대원각은 군부통치 시절 요정정치로 유명하던 곳이기도 하다.
자야는 평생을 대원각에서 요정을 하면서 세월을 보냈지만, 80세 넘도록 살다가 세상을 떠기 전 당시 시가 천억원대가 넘는 대원각을 법정스님께 시주하였다.
법정스님은 7,000평이 넘는 고인의 시주자산을 길상사 라는 사찰로 창건하여 아름다운 불심을 이어가는 도량으로 무한한 생명을 이어간다.
길상사는 전 재산을 다 털어도 백석 시인의 시 한 줄에도 못 미친다는 김자야의 백석시인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베어있는 사찰로서 그 아름다운 시어를 품어 안고 한 시대를 살고 간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가을이 짙게 내려진 길상사에서 백석 시인의 시를 되새게 본다.
여우난골족(族)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적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려(承女)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 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엄매 사춘누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
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 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 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 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길상사는
시인의 사랑을 품고
요정정치의 요람으로 자라
법정스님의 품에 안겨 터전을 잡은 ...
기구한 운명을 짊어진 사찰이다.
가을은 사찰의 태생과 배경을 묻지 아니하고 찾아든다.
자연의 진실한 아름다움은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베푼다는데 있다.
길상사는 서울시내에 자리한 사찰로서 신도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법정스님께서 하산하시어 법문 하시는 날에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부디 자야님의 아름다움이 이어 질 수 있는 영광된 터전이 되기를 빈다.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 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길상사를 나오면서 백석 시인의 시를 자꾸만 되내어 본다.
인연이 남겨 놓은 감나무 꼭대기의 까치밥을 파 먹는 저 까치는 시인과 기생과 스님의 인연을 어떻게 기억할까.
* 일 시 : 2007년 11월 4일
* 위 치 : 서울시 성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