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13)/부처님 오신날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오락가락 산인의 마음에 갈등을 일으킨다.
지인이랑 함께한 산행이어서 힘들지 않게 산을 오른다.
나는 왜 산을 오르는지 이제 묻지 않기로 했다.
구차한 이유를 밝히는게 나를 더 구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적한 등산로에는 내가 꿈 꾸었던 이상이 묻어난다.
산 중턱에 호피를 쓴 견공이 산행에 나섰다.
산인들에게 여유로운 붙임을 늘어 놓는다.
넉살 좋은 견공이 부처님의 자비를 실어 왔는지 여간 예쁘지 않다.
돌문바위 앞에서 염불수행을 하시던 스님께서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하여 등을 달고 이벤트를
열었다.
청계산 돌문바위에도 부처님께서 강림하셨다.
스님은 무슨 공부가 모자라서 휴일마다 여기까지 올라오셔서 염불에 열중이실까.
고행의 한 방법일까.
아니면...
바위가 하늘을 막아서 나무가 비켜 자랐다.
천심일까.
하늘에서 내린 운명일까.
멋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스럽다.
어설픈 운명으로 몸을 꼬아가며 자라는 소나무야..
행복하기를 바란다.
매봉 정상에 있는 예쁜 시비다.
유치환의 바위가 새겨진 비목이 앙증맞다.
바 위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哀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 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忘却)하고
흐르는 구름
먼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스치기만 해도 향기가 돋는 옹달샘이다.
산인들의 갈증을 도와주고, 외로운 이들에게 말 동무가 되어 줄 법한 옹달샘에는 물 맛 보다도
언제나 벗이 되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곱다.
찔레꽃 향기가 온 산에 스며든다.
허락도 없이 내 몸을 감싸고는 첫 사랑의 추억을 부른다.
어색한 찔레순을 건네며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새롭다.
* 일 시 : 2007년 5월 24일
* 산행시간 : 2시간 30분
* 산행코스 : 원터골 입구 - 매봉 - 원터골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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