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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태백산

[나 자신으로 향하는 길]

 

하얀 상고대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를 품고 들머리 화방재를 열고 산길에 접어드니 바닥에 눈이 제법 깔려 있어 아이젠을 착용했다. 하늘은 무겁고 시야는 뿌옇다. 파란 하늘은 커녕 산그리매 조차 보이지 않는다. 바람에 몸을 실어 힘차게 돌아가던 풍력발전기도 자취를 감췄다. 눈이라도 내릴까 기대했지만 이내 빗방울이 떨어진다. 질척한 산길이 못마땅하지만 시절 인연에도 때가 있는 법.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산에 오르는가. 

 

유일사 쉼터 지나자마자 초등학생 무리가 왁자지껄 산을 깨운다. 아마 체육관에서 극기훈련 온 게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 한 명은 힘든 산길에 투정을 부린다. 앉아 쉴 수도 없는 탓에 많이 힘든가 보다. 인솔자가 달래도 영 못마땅한 표정이다. 지나치며 "대단하다. 멋져요."라며 응원을 보내니 굳어있던 얼굴이 풀리며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그들은 왜 다시 내려와야 하는 산에 오르는 걸까.

 

태백산이 자랑하는 주목군락지에 이르렀는데도 뿌연 안개구름이 걷히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이어 장군봉 지나 천제단에 올랐는데도 하늘은 무심히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비를 피할 수 없으니 멋진 겨울산의 풍경은 포기하고 나의 길을 갈 뿐이다. 나는 왜 산에서 겨울 비를 맞고 있는가 자문한다. 이 산의 정상이 나의 목적지였던가.

 

도시에서의 길은 반드시 목적지로 향한다. 그 길을 비행기나 자동차로 가든, 걸어서 가든 우리는 뚜렷한 목적지를 정해놓고 움직인다. 그러나 산길에서는 그 목적지가 나 자신을 향한다. 그러므로 산길은 험준하든 수월하든 큰 의미 없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결국 나 자신을 향한 길이므로 그저 걷기만 하면 된다. 걷다 보면 목적지인 나에게 도달하게 될 테니까.

 

다만 그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성찰하고, 참회하고, 용서하고, 배려하고, 겸손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목적지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산  행  지] 태백산

[산행 일시] 2025년 12월 20일

[산행 경로] 화방재 - 유일사 쉼터 - 주목군락지 - 장군봉 - 천제단 - 당골광장(10km)

[산행 시간] 4시간 30분

 

장군봉
천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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