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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수리산

[치밀한 계획에도 번거로움이 따른다]

 

그리 높지도 않고 가까이 있어서 만만하게 여겼다. 비가 내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을 오른다. 슬기봉 오르기 전까지는 평범한 산 길이어서 비만 잘 피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우의만 챙겨 입었다. 슬기봉 오르는 길에 비가 눈으로 바뀐다. 길도 거칠어지고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겠다는 예감이다. 눈발이 날리는 슬기봉에는 시야가 꽉 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압감이 서려있어, 산본, 군포의 진산답게 그 풍모가 예사롭지 않다. 

 

태을봉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이 가쁜 호흡으로 몰아세운다. 날카로운 바윗길이 군데군데 날을 세우고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태을봉에는 눈이 제법 많이 내리고 춥다. 컵라면 따뜻한 국물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눈발에 건져 먹는 라면이어도 산에서 먹으면 진미가 된다. 

 

태을봉 지나 관모봉으로 나아가는 길. 산에 온 사람이 많지 않아 금세 눈으로 덮인 산 길은 분간이 어렵다. 희미한 흔적을 더듬어 가파른 등로를 내려서는데 낙엽이 눈과 뒤섞여 여간 미끄러운 게 아니다. 두어 번 넘어지다 보니 옷이며 장갑이 모두 젖었다. 순간, 길을 잘못 들었다는 직감이다. 사람 다닌 흔적이 희미하고 낙엽만 수북하다. 기지를 발휘해야 할 선택의 순간이다. 일행 전원 태을봉 기점까지 회귀를 결정한다. 일명 알바를 한 셈이다. 

 

분기점까지 미끄럽고 가파른 길을 올라와 호흡을 몰아쉬고 길을 살피고 있을 때, 산 객 한 명 올라온다. 하산 길을 여쭸더니 횡설수설 말이 길어진다. 초행길인 우리는 그의 말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에게는 너무나 빤한 길이어서 자세하게 가르쳐 주려고 애쓰는데, 오히려 알아듣기 더 힘들다. 세밀하게 알려 주려는 그의 성의는 고맙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경우, 선택지를 많이 주지 말고 단순하게 알려주는 게 좋은데, 치밀한 계획에도 번거로움이 따른다는 사실을 그는 간과했다. 결국 설득력이 떨어졌다.  

 

알아듣는 척하고 그를 돌려세웠다. 대충 감잡고 하산길을 택해서 내려오니 별거 아니다. 관모봉 오르기 전 첫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관모봉 정상을 밟고, 좌고우면 하지 않고 좌측 성결대학교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조금 가파르기는 해도 계단 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눈 비가 내려 풍경도 보이지 않고, 길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헤매면서 깨달은 한 가지. 아무리 작은 산이어도 언제나 긴장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조난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하늘 맑은 날, 다시 수리산을 만날 것을 약속하며 아쉬운 작별을 한다. 그동안 안녕하시게.

 

[산  행  지] 수리산

[산행 일시] 2025년 12월 13일

[산행 경로] 수리산역 - 무성봉 - 슬기봉 - 태을봉 - 관모봉 - 성결대학교 - 안양중앙시장(11km)

[산행 시간] 5시간 10분

 

태을봉 정상
관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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