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의 반달은 그 빛마저 애잔하여 가슴이 시리다. 우리는 그가 일러주는 빛을 따라 산길에 든다.
고요한 여명을 채우고 있는 신선한 공기가 두려움에 풀이 죽은 세포를 깨운다.
심호흡을 크게 하며 출정의 각오를 다진다.
막내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라 그 의미가 사뭇 남다르다.
오육 년 전 별 다른 준비 없이 허겁지겁 지리산 종주 산행을 따라왔다가 엄청 고생했던 기억을 아들은 잊지 못한다.
북한산 일출을 따러 일어선 새벽이 지리산 종주를 위해 발을 디뎠던 새벽과 오버랩되어 묘하게도 상스러운 기분이 든다.
한걸음 한걸음 최선을 다하면 어디든 이를 수 있다.
삶의 행로는 어줍잖게 자만할 일도 아니지만 쉬 포기할 일도 아니다.
우리가 뜻하는 바, 그 다짐 속에 이미 길은 나 있을 것이다.
그 길에는 가끔 실패의 옹이도 맺혀있다.
쓴 맛이 아니라 깊은 단맛이 베인 실패를 경험해보지 못하는 삶은 오히려 단조로운 서정에 불과하다.
백운대 정상에 올랐을때 적잖은 수의 청년들이 올라와 있다.
그들은 어떤 염원으로 이른 새벽을 깨워 이 신성한 백운대 정상에 올랐을까.
그들의 바람대로 해가 뜨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쉬움은 있지만 실망하지는 않는다.
인생에서 단박에 뜻대로 이뤄지는 일이 몇이나 되랴.
컵라면에 물을 붓고 익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에 자욱한 안개를 뚫고 약간은 퉁명스러운 해가 얼굴을 내민다.
반가운 마음에 헛웃음이 나온다.
세상 일 모를 일이야.
일출을 포기하고 접었던 마음을 다시 펴니 보너스 받은 기분이다.
숨은벽으로 하산하는 길.
간간이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 바람으로 산을 오르는 것일까.
저마다 뜻이 다르고 길이 다르겠지만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그 어떤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면 길은 긍정적으로 열린다는 사실을 그들도 깨달았으리라.
숨은벽 계곡에 얼음이 녹아 봄물이 돈다.
새 봄은 또 다른 희망이다.
[산행일시] 2021년 3월 6일
[산 행 로] 북한산성입구 - 위문 - 백운대 - 숨은벽 - 국사당 - 북한산성 입구(10km)
[산행시간] 4시간 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