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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 散文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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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기


  우주에서나 사용할 법한 전화번호가 찍혔다.

  “내가 누군지 알겠어? ...ㅎㅎㅎ”

  5년쯤 연락이 두절되었던 서너 살 많은 형 같은 대학 친구다. 불혹을 넘어서 결혼했는데 아이 갖는 게 쉽지 않아서 인공수정으로

쌍둥이를 낳았다. 귀금속 세공업을 하면서 돈도 꽤 벌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병원을 하겠다고 덤볐다.

  

  그동안 모았던 재산과 형제, 부모, 지인들의 돈을 다 끌어들여 의사였던 사촌형과 동업으로 병원을 연 것이다. 기존에 잘 나가던

병원들도 문 닫을 판에 중소형 종합병원을 시작했으니 쉽지 않은 길을 택했지만, 그는 큰 꿈을 꾸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단이었다. 그가 연 것은 행복한 꿈의 문이 아니라 엄청난 고통의 문이었다. 병원을 제대로 개원도 하기 전에 수시로 전화

가 불통 되었으며, 채권자들에게 쫒기는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다. 

  

  당시에 브로커가 병원컨설턴트 역할을 자임하면서 병원경영에 참여 했었는데, 병원을 개원할 시점에 그는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

로 자기지분을 돌려받고 빠져 버렸다. 신설 병원이라 가뜩이나 자금이 어려운데 브로커 지분만큼 더 채우려니 잠을 이룰 수가 없

었으며,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브로커는 첨부터 병원경영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병원개원 초기에 들어가는 수십억의 리모델링공사와 의료기 구입에 깊숙이

개입하고는, 그 역할이 끝나자 더 이상 빼 먹을 가치가 없으니 자기 지분을 빼 버린 것이다.

  

  그는 중소 종합병원의 경영이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컨설턴트로서 병원 공사와 의료기 구입 금액을 엄청 부풀려서

자기 잇속만 차리고 빠지려는 속셈으로 접근했던 사기꾼이었다.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명망 있던 의사인 사촌형과 친구는 일차적

으로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한 셈이다. 결국 병원은 경영이 어려워 부도를 맞았다.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2차 금융기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수습해서 경매에서 낙찰을 받아 의료법인으로 바꾸고 재기를 노

렸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친구는 수많은 채권자들의 빚 독촉을 견디기 힘들어 숫제 전화통을 끄고 다녀야 할 지경이었다. 안

당해본 사람은 알지 못할 고통이다.

  

  그렇게 힘겨운 시간이 겨우겨우 흘러가던 중, 어느 날 친구의 사촌형은 친구 몰래 병원을 팔아 대충 빚 정리를 하고는 중국으로

잠적해 버렸다. 친구 혼자만 남아 나머지를 정리하기에는 벅찬 일이었다.

  

  풍비박산 난 친구는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슬러서 가족들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에 정착한지 일 년 반 정도 되었다

고 한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친구들과 일체 연락을 끊고 지냈던 친구가 이제 정신을 좀 차릴 수 있게 되었는지 알지도 못하는 이상

한 번호가 찍히는 국제전화로 내게 웃음을 보냈다.

  

  세상 믿을 놈 하나도 없다.

  

  더 속 타는 것은 그 병원이 지금은 땅 값이 두 배로 올라서 엄청난 부를 가져 올 수 있는 보물단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수십억 갖

다 넣고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담보하였던 아름다운 신뢰를 고통으로 만들고는 겨우 몸만 빼서 미국으로 줄행랑 쳤더니,

지금은 그 병원 땅값만 해도 아무 걱정 안 해도 되는 정도라 하니 속 터질 일이다.

  

  오랜만에 그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돈스럽다.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다.

  

  세상은 사기다.

  정치도 경제도 다 사기다.

  국가도 우주도 다 사기다.

  사기통에서는 같이 사기 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 기술을 배우기가 어려우니 살기가 더 힘 드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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