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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 散文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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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는 산이고 물이다.

  아버지는 새벽 들녘에 나가면 안개를 몰고 다니고, 저녁이면 노을을 지고 들어오셨다. 봄에는 산과 들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온 들판을 곡식으로 채웠다. 기침소리 한

번이면 새벽을 여는데 충분했으며, 그 기침소리는 질서고 법이며 명령이었다.

  

  아버지는 작은 일에 대노大怒하지 않으며, 큰일에 허접을 떠는 법이 없다. 아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으며, 자식에 대한 칭찬에 인색하지만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움 없는 요새였다.

  

  아버지는 평온하면서도 무섭고, 무서우면서도 하늘을 가리기에 충분한 우산이었다. 집에 들어와 계실 때에는 집안에 빈 구석이 없고. 나가 계시면 집이 그를 따라간다.

보지 않아도 세상을 꿰뚫었으며, 존재만으로도 오뉴월 땡볕을 가릴 수 있는 그늘이었다. 추운 겨울날 화롯가의 군밤 같았던 아버지는 없는 듯 있으면서도 있는 듯 없는

자연이었다.

  

  요즘은 진정한 아버지가 드물다. 아버지라기보다는 친구 같고 든든하기보다는 만만하다. 그는 어느새 주인이 아니라 객이 되었으며, 그의 우산은 비가 새기 일쑤여서 가

족을 끌어안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그는 이제 고함을 질러도 위엄이 생기지 않으며, 눈초리에 눈물을 머금어도 동정을 얻지 못한다. 그는 아침을 못 먹고 다니면서도 속이

불편해서 먹지 않는다며 억지 행복을 연출해야하며, 마누라 콧바람 소리에도 습관처럼 움찔움찔 놀란다.

 

  때로는 그가 존재하면 거추장스러워지고 존재하지 않으면 시원하기도 하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도 집이 텅 비지 않으며, 들어와도 집은 꽉 차지 않는다. 요즘 아버지는

아무리 아버지 흉내를 내어도 도깨비장난 같다. 자연이 인군군상의 속된 욕심에 오염되어 가듯 아버지도 빛을 잃어간다.

  

  진정한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이름만으로도 영광일 수 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도 한 번도 끊어진 적 없는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내 핏속

을 흐르는 작은 자존심을 달래며 아들을 본다.

  

  자연과 같은 아버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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