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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溪遊錄

백송산장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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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송산장에서의 하루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막연하게나마 전원을 꿈꾼다.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렇게 실행하지 못할뿐이다.

가끔은

내 삶의 순서를 바꿔보고 싶은 생각에 훌쩍 배낭을 챙겨서 떠난다.

산이든 바다든 상관없겠지만,

모자람이 많아서 채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다로 떠나고

넘침이 많아서 비우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이래저래 엉킨 삶을 풀고자 하는 사람들은 산자락으로 기운다.

 

금강산자락 남쪽 끝 언저리에 둥지를 튼 백송산장의 가을 아침은

산안개가 철이른 한기를 몰고 하늘로 오르고

우리는 아직 다 접혀지지 않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의 실타래를 잡는다.

내가 있으나 없으나

계절이야 시간따라 가고 또 오겠지만,

나는 그들의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백송산장은

지인의 친구분들이 강원도 용대리 자연휴양림 곁에 마음을 모았다.

그래서 틈나는대로 흙을 돋우고 돌을 날라 집을 세우고

이제는 그럴싸하게 폼 잡으며 한 숨 돌릴 여유도 생겼다.

휴일이면 휴가삼아 들리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에는 주말농장에 들리듯 찾아서 회포를 풀고 우정을 나눈다.

  

가을을 맞는 갖가지 꽃이 피고

잡초러럼 여겨졌던 궁궁이라는 약재는 제 마음 내키는대로 양껏 자라서

이렇게 예쁜 꽃을 탐스럽게 피워준다.

어느것 하나 쉽게 얻어진 것은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자연의 섭리대로 생겼다가 사라질 뿐이다.

 

  

산장 입구에서 들어오는 초입에는 잔디를 깔고

댓돌 같은 징검다리를 놓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 발 한 발 정겹게 다가설 수 있다.

코스모스가 도열하듯 반겨주는 사이로

댓돌을 밟는 순간

삶에 찌든 짜증은 흔적을 지우고 가벼워진 발자국에는 향기로 채워진다.

그러므로 백송산장에 들어서면 우리는 선인仙人이 된다.

 

 

 

 

  

선인의 삶에 다소 어울릴것 같지 않는 간판이지만

백송산장의 정확한 위치를 위성에 알려주는 유일한 신호다.

세상 사람들이 백송산장의 안부가 궁금하면

안테나를 길게 뽑고 이 간판에 주파수를 맞추면 된다.

그러면 당신이 왜 이곳으로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가르쳐 줄 것이다.

 

 

백송산장은 3동의 건물로 세워져있다.

안방 겪인 몸체와

사랑방 겪인 바깥채, 그리고 사랑채 곁에 붙은 곁방.

 

인간의 삶에서 집은 거주의 중심이어서

목적없이 짓는 집이 있겠냐만은

백송산장의 건물들은 꼭 거주의 목적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친구들이 편하게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물론,

용대리의 맑은 공기와 순수한 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대여도 한다.

서로가 인심을 교감할 수 있는 정도면 자격은 충분하다.

내가 이곳에 하루를 쉴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인연을 곱게 생각하고 좋은 느낌으로 새길 수 있는 자격이 되었나보다.

 

 

산장은 사시사철 금강의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을 끼고 있어서 더 향기롭다.

물론 개울에는 쉬리나 버들치 같은 귀한 어류들이 자신들의 삶을 이어간다.

어느것 하나 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만큼 자연을 닮아있다는 반증이기도하다.

그 개울에 돌을 모아 보를 만들었다.

흐르고 싶은 물은 흐르게하고

쉬어가고 싶은 물은 쉬어가게하는 징검다리같은 보지만

이것 역시 자연을 닮아있어서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텃밭에는 건강한 땅과 맑은 공기가 만들어내는 갖가지 채소들이 자란다.

산장을 들리는 누구나 이 밭의 주인이 된다.

싱싱한 고추나 상치를 따다가 밥반찬으로 먹으면, 세상의 갖은 양념을 한 산해진미가 군살처럼 느껴진다.

신선하고 깨끗한 음식을 먹는 순간 우리는 선인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산을 닮아있는 산장이어서

산장 앞에는 산에서 자라는 머루가 가을을 익혀가고 있다.

까맣게 잘 익은 머루 한 알을 입에 넣으면

자연의 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배가 부르도록 많이 먹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과일이지만,

자연을 사랑할 줄 알고, 자연의 섭리를 이해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단 한 알이면 세상의 맛을 마음껏 담아낸다.

 

 

 

 

 

 

 

 

 

산장 가운데로 작은 계곡이 흐르고,

그 계곡에 걸터앉아 있는 백송정은 저 혼자 잘났다.

그렇지만 그는 잘난척하거나 남의 흉을 보지는 않는다.

그저 덤덤하게 앉아서

고달픈 세상사에 찌든 객들에게 시름을 덜어주고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향기를 채워 줄 뿐이다.

 

 

 

산장주변에는 코스모스가 아무렇게 피었있는듯 하지만

나름대로 우주의 질서를 닮아있어서

잠시 그들에게 안겼던 우리들을 참 행복하게 해준다.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 산행에서 지친 몸을 풀고

내 가슴에 엉킨 넝마같은 마음을 널어놓기 위하여 들렀던

백송산장에서의 짧은 시간이 잊지 못할 기억이다.

기념촬영을 한 이 자유로움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함께 해준 인연들 모두 가을 햇살 같은 고마움이다.

아름다운 복 많이 짓기를 바란다.

 

* 일     시 : 2009년 9월 13일

* 위     치 :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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