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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라 톤

동아 국제마라톤(Ful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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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지기


  멋모르고 아쉬움 없이 살아온 세월입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는 약간의 호기심과 설렘이 있었지만 호들갑 떨면서 좋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조용히 내 가슴에 곱게 담아 지어내는 실 웃음 하나에도 하늘이 넌지시 웃어 주곤 했습니다. 당신을 생각

하면 콩서리하다들킨 듯 숨죽이며 두리번거리면서도 나만의 행복을 꿈꾸던 그 시간들이 참 행복했습니다.

 

  삶이 짙어지고 시간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가면서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불편한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때로는 불평을 쏟

아내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내가 가고 싶은 대

로 졸졸 따라다니며 힘들거나 더러워도 불평 없이 내 그림자를 지켜준 고마운 당신이었습니다.

 

  세월의 탑이 쌓아지는 만큼 아이들이 자랐을 때는 그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습니다. 학교나 학원을 따라다니기도 하고 피

씨방이나 농구코트에도 주저 하지 않았습니다. 더울 때나 추울 때를 가리지 않고 당신에게 주어진 에너지를 모두 쏟아냈습니

다. 등하교 길에 아이들이 짓 굳은 장난으로 양재천에 텀벙 빠지기라도 하는 날에도 당신은 아들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제 멋대로 자라서 이제는 당신 품이 모자라 제 길을 떠납니다. 그래도 당신은 흐뭇한 미소를 아들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당신주변에는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말을 걸어오는 이도 없고 관심을 주는 이도 없는 쓸쓸한 어둠을 지키고 있

을 뿐입니다. 자칫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겠지만 잘 견디고 있습니다.

 

  그 즈음 나는 새 친구를 얻었습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행복했습니다. 적당한 설렘과 말하지 못할 기쁨을 감추기가

힘들었습니다. 어쩌다 구석에 쭈그리고 있는 당신과 눈길이 마주칠 때는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나는 새 친구

에게 정쏟느라 애써 눈 빛을 피하기 일쑤였습니다. 당신인들 왜 질투가 없었겠습니까. 지나친 호들갑에 아니꼬운 마음이

었겠지당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 볼 뿐이었습니다.

 

  새 친구는 뭣 때문에 심사가 틀어졌는지 뾰조록하여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동아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려고 보름 전에 

기투합해서 호흡을 맞춰가며 몇 번 손잡고 연습을 해 보았지만 도무지 새침한 마음을 거두지 않습니다. 나흘 앞으로 다가왔는

데 오른쪽 엄지 발가락위에 멍이 잡혀서 도저히 같이 뛸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다급한 마음에 새 친구의 친정에 들

러 또 다른 친구를 소개 받았습니다. 그는 날렵하지는 않지만 푸근한 인상이 마음에 들어 같이 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

아니었습니다. 지난 번 친구와 다투다 든 멍 때문에 이 친구도 좀처럼 품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고심 끝에 까맣게 잊고 지내던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배시시 조아리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뒤꿈치가 헤져서 도저히 풀

스를 완주 할 수 없을 거 같아 새 친구 둘을 맞았는데 둘 다 이번 출정에는 무용지물입니다. 물론 당신은 요즘 친구들보다는

세련되지도 못하고 뒤꿈치가 불편해서 따라 나서기가 두렵겠지만 염려 마십시오. 제가 당신을 곱게 보듬어 끝까지  같이 달릴

생각입니다.

 

  이제 사흘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렇게 당신이 곁에 있어 주어서 한결 마음 든든합니다. 가다가 쓰러지면 어떻습니까. 당신과

함께 한 시간만으로도 나는 행복할겁니다. 당신이 다소 무거워서 힘겹겠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끝까지 뛸 수 있을 거 같습니

다. 당신은 헤진 뒤꿈치가 벗겨지지 않도록 버텨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처럼 잘 달릴 수는 없겠지만, 서로에게는 눈 빛 만으로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정이 있고 세상 그 누구도 두렵지 않을 묵은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내가 걸어가야 할 궤도가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입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재회한 당신이었는데 오늘 밤에는 당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찌된 영문입니까. 내일 나는 당신만을 믿고 그

멀고 힘든 거리를 함께하기로 다짐하고 마음 한 구석에 든든한 위안을 삼고 있는데 당신은 어디 숨었습니까. 

 

  당신은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아뿔싸!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쓰레기통을 기웃거려도 당신은 이미 마음을

접었습니다. 이대로 영원한 이별입니까. 참 쓸쓸하고 어처구니없는 밤이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낮에 아내가 신발장 정리를 하

는 동안 당신은 밖으로 난 발자국에 서글픔을 가득 채웠습니다. 설움의 무게를 견딜수가 없어서 그 발자국을 다시 안으로 돌

리기가 힘든 탓이었겠지요. 당신에게서 받은 사랑을 채 돌려 줄 겨를도 없이 당신은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 밤에 나는 신발장에서 당신을 기억하는 친구들을 몽땅 불러내서 발에 맞춰보고 벗어내고 하였습니다. 아이들 신발까지도

모두 다 신어봤습니다. 멍울만 없었어도 웬만큼 맞출 수가 있을 거 같은데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새 친구는 친정에 가서 빚

독촉하듯 드러누웠고, 나는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며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이 일러주었습니

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들여 온 새 신발의 깔창을 걷어냈습니다. 용케도 잘 맞았습니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지요. 물론 큰 아들이 말해준 아이디어였지만 나는 압니다.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출발선에 섰습니다. 내 인생에서 또 다른 연극의 장막을 엽니다. 이른 아침 한기가 채 가시지 않는 광화문에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번쩍 들고 기찬 함성으로 힘차게 내 딛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지만 나는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

다. 매 순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당신과 내가 만난 십여년의 인연을 나는 소중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또 다른 어느 때, 내가 마라톤의 출발선에 서거나, 아니

면 내 삶의 소중한 매듭에 설 때마다 나는 당신의 사랑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때마다 나를 곱게 안아주세요. 당신을 사랑합니

다.

 


 

 

 

 

 

   

 

  

 

 

  

  

 

 

 마라톤을 완주한 일면식도 없는 스님과 기념 촬영 한 컷 했습니다..

 

* 일     시 : 2009년 3월 15일

 

* 대 회 명 : 제 80회 동아국제마라톤

 

* 코     스 :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 남대문 - 청계천로 - 흥인지문 - 군자교 - 어린이 대공원 - 서울숲 입구 - 잠실대교 - 석촌호수 - 종합운동장

 

* 기    록 : Full couse 4시간 26분 31초

 

* P .  S   : 마라톤 완주 두번째에 도전하였다.

               첫번째보다 기록이 저조하였지만 실망하거나 두려워 할 일이 아니다.

               마라톤은 욕심이나 행운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마라톤의 결과는 준비한 만큼만 보여 줄 뿐이다.

               지난 겨울 준비를 소홀한 탓이었고,  몸무게가 2kg 더 늘어난 탓이었다.

               물론 신발 때문에 고생한 변명도 보태보지만 변명 또한 나의 기록이다.

               그렇다.

               인생은 변명따위는 필요없다.

               언제나 내가 살아 온 만큼의 결과에 내가 놓여 있을뿐이고 나는 그 길을 충실히 가고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한 때는 내가 운이 없어서, 아니면 팔자가 사나워서 잘 못 들어선 길일까.

               수없이 반문하고 자책하고 세상을 원망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나는 내 길을 가장 충실하게, 완전하게 걸어 왔을 뿐이고 지금도 나는 내 길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걸어가고 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비록 험하고 더럽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내어 줄수는 없다.

               그것은 나만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 행복하게 웃으며 길을 가자.

               언제나 반짝반짝 웃으며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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