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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라 톤

서울 중앙 마라톤(Ful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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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라 톤

 
[삶이 그러하다]
 
한때는 고통을 피할 수만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삶이 그러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 부러움 없이 마음껏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자고,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하고, 삐치고 싶을 때 삐치고, 화내고 싶을 때 화내고, 웃고 싶을 때 마냥 웃을 수 있다고 해서 행복은 아니다. 이제야 알겠다.
 
행복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다. 인간은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욕심이나 이기심 때문에 불행하다. 자신의 손해를 불행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 그것은 배려와 겸손에서 자란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아니다. 마라톤은 인생이다. 마라톤을 왜 하는지를 물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인생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출발선에 섰다. 아마 행복을 찾으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집에서 빈둥빈둥 하루를 보내면 나름대로 행복할 텐데, 왜 이 험한 출발선에 섰을까.
 
진정한 행복은 더하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빼기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그래, 나에게서 나를 빼자. 얼마만큼 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덜어낼 수 있을 만큼 덜어내자. 거기서 작은 행복을 찾자.
 
 
[세상이 그런 줄 알았다]
 
부모님의 삶을 빌어서 태어난 몸이어서 내 삶은 부모님께서 챙겨주시는 것이었다. 배고프다고 울면 젖을 물리고, 비를 맞으면 우산을 받쳐주셨다. 처음 출발하여 얼마간은 힘들지 않다. 다른 주변 사람들과 부딪치기도 하지만 부모님께서 내려주신 자양분으로 충분히 견딜만하다. 자칫 보호가 지나친 탓에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우쭐거리다가 엎어질 수도 있지만 씩씩하게 잘 견딘다.
 
5킬로미터를 지나면서 호흡이 조금 거칠어진다. 유년을 지나 청소년기를 맞으면서 사춘기의 위기가 잠시 오지만 부모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힘이 더 크다. 거친 호흡을 잘 다독이며 묵묵하게 앞을 향해 달린다. 세상이 그런 줄만 알았다. 내가 힘들고 지칠 때면 언제까지나 나를 밀어주고 당겨주는 부모님이 영원히 내 곁에 계실 줄 알았다.
 
 
[삶은 기복의 리듬이다]
 
10킬로미터를 지나면서 차츰 삶이 녹록지 않다는 자각이 느껴진다. 아직까지 청년기의 삶이라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나 자신 스스로 이루고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그만큼 더 경쟁도 치열해진다. 마라톤에서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되는 중요한 구간이다.
 
13킬로미터 지점에서 잠시 회의가 온다. 왜 뛰어야 하나. 이렇게 뛰어서 무엇을 얻고자 하나. 입술을 깨물었다. 입을 벌리면 내 삶의 의미가 새나간다. 그만큼 나의 삶은 퇴색될 터이고 나는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가쁜 호흡을 몰아쉬면서도 굳게 입을 다물고 다짐을 세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15킬로미터 이후에는 다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방황하던 삶을 벗어나서 가정을 꾸리고 멋진 아들 딸도 얻게 되었다. 막연하게나마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는 기쁨과 그 의무감에 힘겨운 레이스를 잊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반환점이라는 안도감은 무한한 에너지다.
 
삶은 이렇게 기복의 리듬을 타고 흘러간다.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작은 애로를 겪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그냥 평탄했다면 지루해서 금방 지쳤을지도 모른다. 힘들 때마다 불평을 할 게 아니라 그 리듬을 즐길 수 있다면 무난하게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울퉁불퉁하면 어떠랴. 내 삶인 것을]
 
인생의 반환점에서 또 다른 시작이다.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면 정말 실수하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공언한다. 인생이 다시 주어지지도 않을뿐더러 다시 주어 진다 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다시 태어나면 내 삶의 길은 또 다른 새로운 길이기 때문이다.
 
딱 한 번 하프마라톤을 뛰어본 경험이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도저히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겠지만, 지금 나는 풀코스라는 인생의 반환점에 와 있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다. 기필코 끝까지 가야만 하는 운명을 짊어진 새로운 길이다. 되돌아보면 긴 세월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크고 작은 상처들을 가슴에 빼곡하게 새겨왔다. 틈이 없어 보이지만 내다보면 아직도 여백이 많은 인생이다.
 
25킬로미터를 지나면서 호흡은 견딜만한데 발목이 뒤틀리고 몸도 제멋대로 구겨지는 느낌이다. 반환점을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몸이 괴로우니까 마음에도 갈등이 인다. 나는 왜 이 길을 가는 것일까. 울퉁불퉁한 길에 서 있는 나는 되돌아갈 수도 없다. 아이들에게 젖도 물리고 우산도 받쳐 줘야 한다. 사회도 불투명하고 아이들 뒷바라지도 무겁지만 내 삶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다.
 
음수대에서 목을 축이려고 잠시 달리기를 멈추었는데 멈춰지지가 않는다. 그동안 달려오던 관성이 있어서 다리가 자꾸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마음에도 여유가 없다. 뒤 돌아볼 겨를이 없구나. 그래 뛰자. 내게 주어진 길을 최선을 다해서 뛰어왔으니까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뛰자. 포기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뛰자.
 
[짧은 햇살에도 웃을 수 있다]
 
가끔은 뒤돌아보는 삶이다. 30킬로미터를 달렸으니 추억할 일도 그만큼 많아졌다. 내게 남겨진 인생은 덤이다. 끝까지 달릴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지라도 아쉬움은 덜하다. 다만, 고집스럽게 지켜왔던 내 삶의 방식만이 최고라고 고집부리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주어진 환경과 현실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결승선에서 멋지게 테이프를 가슴에 걸칠 수 있으리라.
 
꿈이 있었다. 짧은 햇살이지만 따사로운 미소로 석양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싶었다. 나는 지금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온 삶의 여정에서 남에게 해코지하지 않고 지독한 설움에 떨지 않았으니 이만큼 무사하게 왔는지도 모른다. 가을처럼 쓸쓸한 이 길을 편하게 뛸 수 있어서 좋다.
 
이제 두려움 없이 내가 할 일을 해야 한다. 세상에 태어난 은혜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 손자들 재롱에 푹 빠져서 묻혀있기보다는, 기름진 음식과 화려한 장식을 탐하며 세상에 독설을 내뱉기보다는 검소하고 겸손함으로 순응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에 열정적으로 몸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35킬로미터. 세 시간 반 넘게 뛰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다. 이제는 1킬로미터가 10킬로미터처럼 더디다. 뛰어도 길이 줄어들지 않는다. 자는 듯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노인들의 입버릇이 헛말이 아니었구나 생각된다. 37킬로미터 지점에서는 그냥 퍽 주저앉고 싶었다. 살만큼 살았으니 그대로 주저앉아도 여한이 없을듯하다.
 
그래도 그냥 주저앉지 못하고 뛴다. 내 삶의 물음을 다 알지 못하였으니 뛸 수밖에 없다. 조금만 더 뛰자.
 
 
[결승점에서 다시 이 길을]
 
원 없이 달렸다. 빨리 이 길을 벗어나고 싶다. 누구를 위하여 무작정 뛰었는지 모르지만, 겁 없이 출발선에 서서 두근거리던 마음을 재우며 시작했던 내 삶의 여정에 종착점이다. 다시 마라톤을 뛰라고 하면 뛸 수 있을까. 그건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었으니 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더 잘 뛸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것은 또 다른 새로운 길이기 때문이다.
 
연습이 없었던 삶에서 나는 얼마만큼 행복할 수 있었는가. 자신도 모른다. 자신이 자신을 얼마만큼 덜어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행복은 기준도 없고 계측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이다. 다시 뛰어야 한다면 행복 같은 건 묻지 말고 그냥 뛰자. 세상 끝나는 날까지 그냥 웃으며 뛸 수 있으면 좋겠다. 행복이란 그렇게 생겼을거야.

 

 
* 일      시 : 2008년 11월 2일
* 대 회 명 : 2008 중앙서울마라톤
* 참가분야 : 풀코스(42.195km) - 참가번호 : 9699
* 공식기록 : 4시간 8분 10초
 
* P.S
  내게는 첫 도전이었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결코 쉽게 생각한 적은 없다.
  겁 없이 도전을 내밀었고, 나는 결승점을 밟았다.
  내 인생에서 또 다른 힘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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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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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K 5K 10K 하프 반환점 30K 40K 완주
(Net)
완주
(Gun)
2008 현광환 9699 4432 2507     00:57:01 02:00:48 02:24:47 02:51:52 03:53:21 04:08:10 0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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