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의 소통
딸아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연신 손가락을 내저으며 수화로서 소통에 열중이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모습으로 딸아이의 수화에 맞장구친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양재천을 걷는 부녀의 모습은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아버지는 딸아이와의 소통을 위하여 매일아침 양재천으로 산책을 나온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양재천은 인간들이 쏟아내는 온갖 폐수들을 끌어안고 도시의 꽉 막힌 공간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누구의 잘못이랄 것도 없이 생명으로부터 따돌린 그곳은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이었다. 인간들은 자신들만의 잘난 소통을 위하여 더럽혀진 양재천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오물이 튕길까 봐 코를 막고 둘러 다녔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소통되어야 할 곳이 막히면 곧 죽음이다. 인간에게 만병은 소통의 단절로부터 생기듯 우리가 기대고 살아가는 지구가 막히면 자연의 질서는 파괴된다. 그것은 곧 우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한다. 작은 지구에서 모세혈관 같은 양재천이 막히면 우주전체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얘기다. 양재천이 병든 이유가 인간의 무지와 게으름이었다면 하늘을 우러러 무슨 변명을 늘어놓을까.
생명의 몸부림이 절실하던 차에 늦게나마 작은 깨달음으로 소통의 시도가 이어졌다. 조금씩 하늘과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양재천에는 생명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간이 억지로 만들어낸 어설픈 자연이었지만, 차츰 제법 의젓한 생태계의 틀을 갖춘 모습이다.
갖가지 꽃들이 철 따라 피고 지면서 따뜻한 향기를 전해줄 뿐만 아니라 잊혔던 감성을 꺼내보라고 보채는 모습이 앙증스럽다. 달팽이가 지천으로 늘려있고 손가락만 한 지렁이가 꿈틀대며 인도로 거리낌 없이 기어 나온다. 간혹 자전거에 밟혀 죽기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줄기차게 기어 나온다.
팔뚝보다 큰 잉어들이 떼를 지어 양재천이 비좁다고 아우성이다. 그들은 지느러미가 닳아 터지는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기 몸보다도 낮은 곳을 기어오를 때는 힘이 넘치는 비늘을 번뜩이는 모습에서 생명에 대한 엄숙함마저 느낀다. 또 다른 소통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그들은 산란철마다 양재천 에 보금자리를 튼다. 잉어 떼들을 보고 있노라면 입술이 앙다물어지고 주먹에 힘이 불끈 쥐어진다. 그들을 보면서 고기라고 느껴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명이며 자연이기 때문이다.
양재천은 자연과 단절된 소통을 위하여 노력한 결과 자연을 더 많이 닮은 정원이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지친 심신을 풀어내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겨우 소통의 문을 열었는데 힘들어서 지칠까 봐 한편으로는 걱정이다. 엊그제는 도심에서 바둥거리며 살다가 발가락이 잘려 몽당발이 되어버린 비둘기가 몸을 쉬려고 양재천에 날아들었다. 그에게는 어떤 소통의 공간이 필요했을까.
가끔 큰 물이 져서 보물 같은 생명들이 몽땅 쓸려갈 때는 안타깝기는 해도 두렵지는 않다. 큰 물이 빠지는 꼬리를 밟으려 사람들이 바쁘게 양재천에 다가서듯이, 양재천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던 생물들도 어디에 숨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타나서 금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큰 물 또한 자연의 소통수단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서울 도심에서 성난 민심들이 정부와 대항하고 있다. 미국 소고기 수입에 관한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잘못된 협상을 문제 삼는다. 정부에서 중요한 정책을 입안하면서 민의를 무시했다는 게 민심의 항변이다. 완전히 꽉 막혔다 소통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연일 촛불시위가 커져간다.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궁리를 찾지 못한다.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소통되어야 할 곳은 소통되어야 하고 막혀야 할 곳은 막혀야 한다. 우리는 소통과 막힘에서 매듭을 풀지 못한다. 서로의 입장에서 소통을 하기 위하여 애를 쓴다면 못쓰게 버려진 양재천에 잿두루미가 찾아오는 이유를 알 것이다. 촛불을 들고 양재천에 와서 갖은 생물들의 소통의 질서를 배울 수 있으면 두려울 게 없다.
양재천 둔치와 둑 사이에 사람들의 소통의 길인 인도가 물길 따라 길게 정비되어 있다. 그 길로 인하여 인간과 자연과의 소통은 웬만큼 이루어졌다. 문제는 자연과 자연과의 소통이 문제다. 둔치와 둑을 이을 수 있는 eco-bridge가 절실히 필요하다. 지렁이와 달팽이들이 마음 놓고 자연을 이을 수 있도록 군데군데 소통의 터널이 있었으면 좋겠다.
인간과 인간의 소통에는 화려한 웅변보다는 따뜻한 손길 한 번이면 뚫지 못할 벽이 없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것을 간과해 버리기 쉽다.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가 모자라기 때문일 게다. 인간과 자연과의 소통에는 배려와 인내가 필요하다. 자연이 인간을 품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고 기다려 줄 수 있다면 소통 못할 일이 없다. 자연과 자연과의 소통에는 무슨 말이 필요하랴. 저명한 환경학자의 말을 빌어 올 필요도 없이 그냥 그대로 두면 된다.
양재천에는 더 이상 인간의 손길이 필요치 않다. 인간이 양재천을 괴롭히지만 않으면 스스로 소통한다. 그것이 양재천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