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 해수욕장 모래 뻘에 봄볕이 곱게 내려앉는다. 겨우내 움츠리고 바다를 그리워했던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고 작은 파도가 모래사장을 씻어내느라 바쁘다. 만난 지 오래되지 않은 젊은 연인들은 파도를 핑계로 서먹한 기운을 풀어낸다. 여유가 넉넉한 연인들은 따가운 햇살을 피해 벤치에 앉아 토닥거린다.
중년의 부부들은 멋쩍게 옛날을 회상하면서 폼을 잡고 사진을 찍는다. 그들은 사진이 잘못 나왔다고 투덜거린다.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초췌해진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기보다는 세상을 원망하기도 한다. 뭐 하나 떡하니 이뤄 놓은 거 없이 세월만 가져다 쓰다 보니 초조할밖에. 뭘 하나 이루기 위해서는 너무 늦었다고 포기하는 마음이 짙어지니까 사진을 볼수록 실망스러운 거야.
모 기업가는 불혹의 나이에 기업을 일으켜 1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12번째 큰 기업으로 성장시켜서 지금 이 어려운 시기에도 긍정적인 생각과 공격적인 경영으로 세상 두려운 줄 모르게 쭉쭉 뻗어나가고 있다. 또 어떤 이는 불혹에 늦둥이를 낳아서 가끔은 걱정도 하지만, 걱정보다는 20년이나 젊어진 뜨거운 피를 가슴에 담고서 긍정적인 생각과 아이를 바르게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으로 늘 웃고 다닌다.
한 때는 세상 모두를 갖기 위해 살았고, 또 한 때는 나 자신을 갖기 위해 살았다. 이제는 세상 모두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내 가슴속에 깃들어 있는 모든 욕망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비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자체가 또 다른 욕망이라는 걸 곱씹어 본다. 알량한 그 무엇이 나를 감싸고 있나. 어쩌면 비우겠다는 마음이 나를 속박하는 가장 큰 울타리는 아닐까. 비우겠다는 마음조차도 잊고 살자.
한적한 광안리 해변가에서
파도가 밀어주는 대로
파도가 당겨주는 대로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처럼
일렁일 때마다 그 각도를 달리하는 그런 삶이면 어떠랴.
* 일 시 : 2008년 3월 1일
* 장 소 : 부산시 광안리 해수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