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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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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천문

by 桃溪도계 2007.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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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무인의 피가 끓는다

우리나라 3대 변혁(變革)의 산이 있으니, 구월산(九月山), 계룡산(鷄龍山), 모악산(母岳山)이다. 왜 변혁의 산인가? 들판 가운데 솟아 있는 산들이기 때문이다. 피땀 흘려 농사지은 곡식을 탐관오리에게 수탈당한 민초들이 이 산으로 들어가 도를 닦으며 변혁을 꿈꾸었다. 이 3산 중에서도 특히 계룡산은 역대 안티(Anti) 세력들의 총 집합처였다. 산 전체가 기운이 강한 통바위로 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3년만 이 산에서 거주하면 한 소식을 얻는다고 알려져 왔다. 일설에 의하면 여러 명산을 섭렵한 뒤에 마지막 들어가는 산이 계룡산이라고도 한다. 철이 들어야 알 수 있는 산이 계룡산이다. 현재 계룡산에는 기천문(氣天門)의 문주(門主)이자, 무술 고수인 박사규(朴士奎·59) 선생이 10년째 거주하고 있다.



박 문주가 있는 거처는 갑사와 신원사의 중간쯤에 자리 잡은 안골에 있었다. 연천봉(連天峰)이 바라다 보이는 ‘안골’은 일제암흑기에도 전국 팔도의 기인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서, 주변 봉우리들에서 품어져 나오는 바이브레이션이 미국의 세도나(sedona)보다 더 좋은 것 같다.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기운이 농축되어 있는 곳이다. 박 문주는 허름한 조립식 주택에 살고 있었다. 170㎝도 안 되는 자그마한 체구였지만, 상대를 밀어내지 않고 품어주는 온화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눈빛을 지닌 이 무술고수에게 인사치레를 생략하고 단도(單刀)로 직입(直入)하는 질문을 던졌다.

“왜 산에 사는가?” “3000년 이상 이어져 오는 ‘기천’의 역대 조사(祖師)들이 불러서 살게 된 것 같다.” “중년의 나이가 되니까 인생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사는 게 참 허(虛)하다. 당신은 사는 것이 허하지 않은가?” “사명감을 가지고 살면 허하지 않다. 자기 혼자 먹고 사는 문제에만 골몰하다 보면 나이 먹어서 반드시 허무감에 직면한다. 한 세상 태어나서 이웃과 민족에게 무엇인가 봉사하고 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살면 매일 매일이 의미가 있다” “보통 사람은 그런 생각을 갖기가 어렵다. 어떻게 해야 그런 사명감을 지닐 수 있는가?” “먼저 몸을 닦아야 한다. 몸이 닦여지지 않으면 마음이 변할 수 없다. 적어도 매일 1시간 이상은 자기 몸을 수련하는 데에 할애해야 한다.”

“어떻게 몸을 닦는가?” “우선 간단하게 ‘내가신장’(內家神將)이라는 자세 하나만 취해도 도움이 된다. ‘내 몸을 지켜주는 신장의 역할을 하는 자세’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자세는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양쪽 발끝은 안쪽으로 향하게 한다. 엉덩이를 약간 밖으로 빼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두 손바닥이 바깥을 향하도록 뻗어서 이마 앞 30㎝ 정도에서 둥그렇게 교차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손목과 허벅지의 근육을 꺾어서 비틀어야만 역근(易筋)이 된다. 역근 과정은 고통스럽다. 몸이 고통스러워야만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울러 역근이 되면 기운이 급속하게 하단전으로 집중된다.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몸 안의 막혔던 기맥(氣脈)이 뚫린다. 뒷골 아픈 증상, 우울증, 심장병 등이 치료된다. 매일 집에서 10분씩만 해도 효과 있다. 고구려의 무인들도 틈만 나면 이 내가신장을 하면서 몸을 단련하였다.”

29살때 합기도 고단자 뽐내다 스승 만나 한手에 나가 떨어져

제자 됐더니 기다리는 건… 몽둥이 찜질과 혹독한 수련 뿐

육신의 고통 이기니 고수의 경지 알게 됐죠 계룡산 타며 기천 맥 잇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박 문주는 어떤 사람인가. 합기도 고단자였던 그는 29세 때인 1977년. 서울 약수동에 산중무술의 고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도장에 찾아가 다짜고짜 한판 붙었다. 그러나 박사규는 대련에서 상대방의 한 수(手)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마룻바닥에 처참하게 나가 떨어졌다. 그 고수가 바로 설악산의 원혜상인(元慧上人)으로부터 기천무술을 전수받았던 대양진인(大洋眞人)이었다. 이후부터 대양진인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혹독하기로 소문난 수련과정을 모두 겪어본다. 하루에 6시간씩 발뒤꿈치를 든 채로 움직이지 않고 내가신장을 하기도 했다. 발뒤꿈치 부분에는 쇠못이 5~6개 박힌 쇠못 판이 깔려 있어서 뒤꿈치를 내릴 수도 없다. 스승이 몽둥이를 들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사정없이 등짝을 강타하였다. 고통이 극한점에 이르는 순간이 되면서 육신을 잊어버리게 되는 체험을 하였다. 역대 기천의 조사들이 노래한 ‘동유광풍’(同遊狂風: 미친바람과 함께 노닐고)과 ‘동숙취월’(同宿醉月: 취한 달과 함께 자노라)의 경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 문주는 매일 아침 6시부터 9시 반까지 산을 탄다. 연천봉, 문필봉, 관음봉의 10km 코스를 돌면서 갖가지 무술동작을 연마한다.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는 전국에서 찾아온 제자 30~40명과 함께 연천봉 밑에서 수련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돈도 없고 생기는 것도 없지만, 그 새털같이 가벼운 몸으로 계룡산을 찾아오는 제자들과 내방객들에게 삶의 활력을 선사하는 것이 그의 일과이다.

[글=조용헌·동양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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