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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 行

동유럽 기행(11일 차) -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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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콘스탄친의 유스티나 집에서 이번 여정의 마지막 아침을 맞는다. 딸과의 인연으로 만나 분에 넘치는 호의적인 대접을 받았다. 지난번에 밥값이라도 해야겠다며 시작했던 정원의 나무 일부를 손질했다. 시간이 여유로우면 모두 해주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아쉬웠다. 아침 먹기 전에 집 주변 숲에 산책을 갔다. 사랑을 독차지하던 반려견 '피핀'이 앞장선다. 평지에 조성된 숲에는 소나무, 자작나무가 많은데, 소나무 벌목 작업이 한창이다. 워낙 우거진 숲이라 간벌을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 숲의 순기능이 느껴져 부럽다. 가을철이면 이 숲에 식용 버섯이 많이 생산된다고 귀띔한다. 자작나무에 말굽버섯이 많이 붙어 있어서 한 개만 땄다. 가져오지도 못할 것이기에 습관적으로 따기만 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실에, 지난번 방문 때 선물로 드렸던 모란꽃 족자가 걸려있다. 우리의 호의를 긍정적으로 이해해 줘서 참 반가운 인사다. 부귀와 영광을 상징하는 모란꽃의 바람대로 유스티나 집에도 좋은 기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작별 인사를 했다. 10월에 한국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 하니, 그때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가슴 짠한 작별을 했다. 선한 아가씨와의 아름다운 이별이다. 
 
쇼팽공항 주변에 있는 렌터카 회사에 차를 반납했다. 11일 동안 2,360km를 타며 동고동락했던 일등 공신이다. 오른쪽에 좀 긁히긴 했어도 무사하게 차를 반납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렌트 비용이 2,500,000원 정도여서 좀 비싸다 싶었는데, 보험료가 절반이다. 그래서 외장에 긁힌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공항에 도착하니 유스티나 언니 마르타가 배웅 나왔다. 출국 수속하는 중에 수화물 캐리어 쟈크가 터져 현지에서 수습하는데, 현지어가 능숙한 마르타가 도와줬다. 비닐로 감아주는 비용이 25,000원이다. 해외여행 갈 때 꼭 체크해야 할 부분이다. 출국 수속이 끝나고 마르타와 정 깊은 작별을 했다. 딸 내외는 7월에 학술회의 및 답사 일정으로 몽골에서 마르타를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다 한다.
 
폴란드 국적기인 LOT 항공사 소속의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기내에는 한국 사람이 많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폴란드 방문했다가 귀국하는 사람들일 테고, 폴란드 사람들은 한국을 방문하러 비행기에 탄 사람들일 것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한다. 대부분 관광이나 비즈니스 차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에게 한국에서의 일정에서 좋은 일이 많기를 바란다. 
 
사돈 내외와, 딸 내외와의 조합이어서 당초 여행이 좀 불편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염려와 달리 모두 건강하게 행복한 여정을 무사하게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마무리한다. 이번 여행 동안 딸 내외는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낯 선 여행지를 운전하며 찾아다니는 일도 쉽지 않았을 테고, 부모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신경도 많이 쓰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알지도 못하는 길을 틈만 나면 앞서가던 아버지들 단속하는 일도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친구 집에 숙박하는 일도 얼마나 신경 쓰이는 일인가. 아무튼 수고한 덕분에 무사하게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이번 여행 동안 여행기 콘텐츠를 40편 넘게 작성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새벽잠을 깨워 졸음을 참아가며 마무리했다. 솔직히 사진만 남겨서는 헷갈리고 기억의 한계를 느껴 작성하게 된 것이다. 여행기를 작성함으로써 여행지에 대한 복습효과도 분명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는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다흐슈타인 전망대와 체코 프라하 시내 전체를 덮고 있던 빨간 지붕이다. 
막연하게 동경했던 알프스의 눈을 직접 밟았던 점은 인상 깊은 여정이다. '세계테마기행'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자주 만났던 유럽의 고풍스러운 빨간 지붕을 왜 그리 직관하고 싶었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겠다. 그리고 니콜 집과 유스티나 집에서 베풀었던 정성스러운 호의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어쩌면 관광보다는 여행의 맛을 제대로 느낀 여정이었다. 
 
여행을 하기 전과 여행을 하고 난 후의 나 자신은 변한 게 없다. 나의 본질은 그대로이며, 바쁘게 싸돌아 다녔던 여행지도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럼 우리는 왜 여행을 동경하며,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는가. 여행지에서 보고 들으며 학습한 교훈이라야 별거 없다. 굳이 보고 듣지 않아도 삶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여행을 통하여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 역시 삶이라는 굴레에 견주면 티끌만 한 부스러기 정도다. 그래도 우리는 기회만 되면 여행을 꿈꾼다. 왜 그럴까.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장자'에게 그 답을 구한다. 
'위대한 여행은 지구를 열바퀴 도는 여행이 아니라, 단 한 번이라도 현지에 녹아드는 것이다' 라는 간디의 말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일시] 2025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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