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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삼각산 의상능선

by 桃溪도계 2023.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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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길고 힘들었던 장마 뒤끝이라 햇볕이 고맙기는 하지만, 습도가 높은 산 길은 한증막이다. 복 더위에는 산에 오르는 일을 가려야 하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가파르고 까다로운 의상능선 길을 택해 사립문을 열었으니 고생길을 자초한 셈이다. 몇 발자국 떼지 않았는데도 아랫도리까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쏟아낸 땀만큼 물을 보충해야 하는데, 물을 많이 준비하지 못해 불안한 산길이다.   
 
북한산성 탐방센터에서 의상봉 능선 이정표를 따라 오백 미터쯤 올라왔을 때, 망태버섯 군락지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망태버섯도 더위에 지쳤는지 치마가 축 처졌다. 일부 개체는 말라서 흔적을 지우고 있다. 지쳐가는 마음에 설렘을 얹었으니 잠시 견딜만하다. 행운의 부적 같은 망태버섯을 가슴에 새기고 가파른 등로를 따라 오르는 길에는 바람 한 점 없다. 미풍이라도 불어주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미동도 없다. 
 
의상봉에 올라서도 바람이 없다. 대기 중에 수증기가 많아서인지 시야도 맑지 않아 백운대, 인수봉이 선명하지 않다. 용출봉, 용혈봉 지나면서 몸이 축축 늘어진다.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쉬기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최악의 조건이다. 중간에서 포기하고 내려가려 해도 길이 만만치 않다. 나월봉 마지막 봉우리를 오를 때는 더 이상 산행을 진행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겠다 싶을 만큼 기력이 바닥이었다. 물 한 모금이 간절하다.
 
나월봉 정상에서 더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한숨 돌렸다. 하산 길은 미리 정한 삼천사 계곡길이다. 계곡 상류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작은 폭포를 이룬 담은 마셔도 될 만큼 깨끗한 물이 넘치는 천연 풀장이다. 앞 뒤 잴 것도 없이 옷 입은 채로 풍덩 빠졌다. 의상능선을 오르면서 지쳐 축 늘어진 세포들이 차가운 계곡물을 만나니 흩어진 퍼즐을 맞추듯 제 자리를 찾는 느낌에 피로가 싹 가신다. 
 
함께한 친구 말처럼, 물 한 방울이 소중하지만 결코 물속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은 진리의 영역이다. 권력과 금전도 일상생활에서는 물만큼 소중하지만 그 속에 파 묻혀 살아갈 수는 없다. 복 더위에 힘들게 산을 오르고 탈진한 상태에서 계곡을 만나면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행복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은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물 한 바가지, 공기 한 줌이다. 
 
[산행 일시] 2023년 7월 29일
[산행 경로]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 의상봉 - 나월봉 - 청수동 암문 - 삼천사(9km)
[산행 시간] 6시간
 

망태버섯
장수풍뎅이
닭의장풀
며느리밥풀
토끼바위
메밀
꿩의다리
자주조희풀
누리장나무
산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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