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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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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길을 걸으며]

 

산 길 끊어진 자리 성곽길 맺히고 그 길 따라 다시 걷노니 그간 안녕하신지.

오백 년 전 고립무원의 성안에 갇혀 끝내 무릎을 꿇어야만 했던 역사를 전해 듣기는 했지만 가슴속 깊이 실감하지는 못하겠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전장의 의기로 촘촘히 여몄던 성은 세월을 따라 허물어지고 다시 쌓기를 반복하여 이제는 공원의 산책길이 되었다. 다시 이 성을 전쟁의 방어기지로 사용될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친구와 함께 걷는 이 길은 참 복 된 길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를 두고 한 말인가 보다.

 

땀과 눈물에 저려 쌓은 돌담이 흐트러진 바람을 막아주고 푸른 소나무 숲이 울울창창 뻗어 있어 신선한 공기를 내어준다. 군데군데 암문을 내어 바깥세상을 살필 수 있게 하여 심심하지 않으며, 오르락내리락 올망졸망 이어지는 산 길은 지루하지 않다. 성곽 너머 펼쳐진 서울의 현대식 건축물과 한강의 조화는 상전벽해의 전형이 되었다.

 

친구 영광이는 몇 년 전에 앞뒤 재지 않고 터키로 돌진하여 2년간 살았던 삶의 궤적들을 풀어낸다. 아무 성과 없이 빈 손으로 귀국하였으므로 가족에게는 실패한 가장의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자신은 성공을 위한 징검다리였음을 굳게 믿고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는 과정일 뿐이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새기며 산성 길을 걷는다. 한 때 갖은 외풍을 다 막아주리라는 바람으로 쌓았던 성이었지만, 정작 병자호란 때에는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성문을 열어버린 허약함을 어쩌랴. 그러나 세월 지나고 나라에 힘이 생기니 남한산성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는 남한산성을 통하여 자신의 미래를 반추해본다. 이 길은 영광스러운 성공의 길이다.

 

인생 육십.

살만큼은 살아봐서 왜 살아야 하는지는 대충 안다. 그렇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쉽게 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 살아봤으니까 쉽지 않음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 별거 없는데 우리는 스스로 어렵게 살아가는 함정에 갇혀서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뿐이다.

육십이 넘으면 친구와 가족을 삶의 활력으로 삼고 살아가면 된다.

오늘 같이 산성 길을 걸으면서 두런두런 얘기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살아가면 된다.

 

[산행 일시] 2021년 12월 18일

[산행 경로] 남한산성입구역 - 남문 - 서문 - 북문 - 동문 - 남문 - 산성역(16km)

[산행 시간] 5시간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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