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산객이 산길을 여쭙는다.
불광역에서 향로봉까지 올라서는 숨을 헐떡이며 백운대까지 가는 정보를 찾는다.
삼각산 산행이 만만치 않은데 이십 대의 젊은 여성이 어떻게 혼자 나설 생각을 했는지 한 편으로는 대견해 보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무모해 보이기도 하다.
앙다문 입술에서 느껴지는 결기를 보니 못할 일도 아니다 싶다. 노파심에서 먼 길을 갈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하니 가다가 힘들면 하산하겠다고 말한다. 마음 같으면 함께 걸으며 가이드해주고 싶지만 원치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전체 산행 거리와 날머리 방향을 묻길래 아는 대로 설명을 해주고 먼저 길을 떠났다. 적당한 거리에서 뒤따라 오겠거니 생각하면서 앞서가고 있는데 실수를 직감했다. 전체 산행거리와 산행 시간을 잘 못 일러줬다. 이를 어쩌나 조바심이 났다. 잘못된 정보로 무리한 산행을 하다가 낭패를 보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자꾸 뒤를 살핀다. 쉼터에서 혹시 만나면 막걸리라도 한 잔 나누며 정보를 수정해줘야겠다 생각하고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다. 땀이 식고 한기가 들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길을 재촉했다.
포기하고 하산한 것일까. 아니면 천천히 따라오고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음 한 편으로는 송구한 마음을 지울 길 없어 천천히 걸어보기도 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문수봉 정상에서 북한산성 입구로 하산길을 잡았다. 아마 그는 천천히 걸어서 백운대까지 갈지도 모르겠다. 삼각산 산길은 나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자신만만하게 길을 안내했는데 실수를 했다. 나는 아직 올챙이다. 한 번의 실수가 자칫 사람을 곤혹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든다.
대남문에서 북한산성입구로 향하는 하산길 계곡에는 군데군데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엊그제 내린 잔설이 삼베를 펼쳐놓은 것처럼 수북이 쌓인 나뭇잎에 켜켜이 흩어져 있다. 겨울 산행길이 만만치 않을 텐데 길을 잘못 일러준 탓으로 고생을 하면 어쩌나 자꾸 마음에 걸린다. 이왕 길을 잘못 일러줄 바에는 거리를 더 많이 일러줘 포기하도록 했으면 낭패를 보는 일은 없을 텐데, 길을 짧게 알려줬으니 무리하게 도전했다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어쩌나. 북한산성 입구 날머리에 다다랐을 즈음 지나온 산 길을 되돌아본다. 소화 불량에 걸린 것처럼 가슴이 켕긴다.
산길과 인생길은 닮아있다.
[산행 일시] 2021년 12월 5일
[산행 경로] 불광중학교 - 향로봉 - 비봉 - 문수봉 - 대남문 - 북한산성입구(11km)
[산행 시간] 4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