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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桃溪遊錄

벌초 단상(短想)

by 桃溪도계 2014.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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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단상(短想)

 

 

조상들이 터를 잡고 옹기종기 살았던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벌초를 거스른 적이 없다.

가파른 현대의 삶 속에서 일일이 다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후손들 중에는 멀리 타지에 나가 살면서 집안 일에 손을 놓다시피 한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벌초 때가 되면 손이 모자란다.

참석하는 사람은 매번 참석하고 그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참석하지 않다보니 공평하지 못함에 대한 다툼이 생기고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벌금을 과금하기도 한다.

그나마 벌금이라도 꼬박꼬박 내면 다행이련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으니 나름 불평이 생긴다. 

친족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일반 친목동호회처럼 회칙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회비 미납자에게 매정하게 선을 그을 수 없으니 꺼림칙한 상태에서

불편함만 쌓여간다.  

 

현대인의 삶이라는게 마냥 조상을 중심으로 뭉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농사가 산업의 근간이었던 때는 조상의 터전을 벗어나서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었으니 자연히 친족을 중심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어떤 이는 아예 먼 이국 땅에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조상의 묘를 관리한다는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인구가 급격히 줄어가는 세태를 감안한다면 이후 세대는 자손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묘가 너무 많아진다.

그래서 몇 몇 종중에서는 조상의 묘를 모두 모아서 간단하게 관리 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또한 우선의 안위를 헤아릴뿐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언제까지 벌초를 이어갈 수 있을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이어 갈 생각이다.

나중에 힘에 부치면 상황에 따라서 다른 대안으로 대체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것같다.

그런데 자식 세대에게 조상의 묘를 일일이 들춰내며 관리를 강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자식이 아버지의 고향을 부담없이 들락거릴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 생각하는데

찾기도 쉽지 않은 몇 대조 할아버지 산소를 일일이 떠 맡게 된다면 자식은 고향을 어떻게 생각할까 염려가 앞선다.

 

장례문화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몇 십 년 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화장만은 안된다고 고집했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이제 스스로 화장을 유언한다.

이런 문화가 좀 더 지속되어 상식화되면 우리에게는 조상들의 묘만 덩그러니 남을테다.

후세의 세대들 입장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자기를 중심으로 가까운 조상들은 화장을해서 산소도 벌초도 없는데,

그 윗세대의 산소를 관리한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까울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시대 흐름에 따르겠지만

종국에 가서는 산소나 벌초는 우리문화에서 사라질 운명임이 분명하다.

 

벌초를 하는 것은

지금까지 이어 온 전통을 하루 아침에 쉽사리 끊지 못하는 것이며,

아직까지는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 일     시 : 2014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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