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피면
연분홍 꽃등을 들고 꽃길을 가신 아버지
불초소생은 아버지를 여의고 복사꽃이 필 때마다 가슴을 울먹입니다.
십수년의 계절을 바꾸며 손자들은 훌쩍 자랐습니다.
무한히도 좋아 하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살아생전에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생선회와 술 한 잔 제대로 올리지 못했음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제가 불효의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어서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옛 성현들은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를 다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소생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지라 반백이 되어 아버지 기일을 맞으며 기이한 변명을 찾아냈습니다.
살아생전에 효를 다했다면 제 잘난 맛에 건방지게 살아갈텐데...,
어찌 사람의 도리라 하겠습니까.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단 한번도 불효의 죄를 벗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만한 다행이 어디있겠습니까.
복사꽃이 피면
아버지께서 복숭아 나무를 심고 흡족한 마음으로 훗날을 기약하시던 일.
거름을 듬뿍 내시고 탐스러운 복숭아를 꿈꾸던 일.
더운 여름에 복숭아를 따 궤짝에 담아 지게에 얹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식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하시던 일.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꽃송이에 맺힙니다.
그때는 세상에 복사꽃 만큼 예쁜 꽃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복사꽃의 기품은 여느꽃 못지 않지만,
꽃이 필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불효한 송구함을 담다보면 슬퍼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복사꽃이 좋습니다.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고, 희망으로 가득했던 옛 일을 추억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풍족해졌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살기가 어렵다고 많이 힘들어 합니다.
소생 역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있습니다.
다시 복사꽃이 피었습니다.
그 꽃에서 아버지가 전해주시던 희망을 찾았습니다.
슬기롭게 이겨내겠습니다.
근자에 들어서는 산소도 자주 찾아 뵙지 못했습니다.
불효의 마음을 덜어내서 그랬으면 좋겠지만,
오히려 불효가 더 커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탓하지 않겠습니다.
더 많이 겸손하고 배려 할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내년에도 반드시 복사꽃은 필 것입니다.
* 일 시 : 2013년 4월 17일
* 장 소 : 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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