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인간에게 주어진 한 평생이라는 삶 속에서 얼마만큼 겸손하면 가장 인간답게 살다 갈 수 있을까.
저기 저 태백산 만큼만 겸손하면 되오리까...
태백산은 장엄하거나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지 않는다.
그냥 산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제 생긴대로 그냥 버티고 있을뿐, 단 한번도 자신을 내 놓고 자랑해보지 못했을만큼 수수한 산이다.
검천동 들머리에는 민가 한채가 외로운 겨울을 눈속에서 시름하고 있다.
큰 산을 오르는 산꾼의 마음을 너그럽게 견준다.
가슴을 옹죄이고 있던 외진 두려움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금강송들이 하늘로 쭉쭉 뻗을 기세로 산꾼들을 맞는다.
푸석했던 마음이 값진 솔향에 끌린다.
세상 인심도 넉넉해진다.
등에 땀이 흥건이 베이고 불규칙한 호흡의 리듬이 적응될 무렵 문수봉 정상에 올랐다.
천하가 발 밑이다.
태백산에는 며칠전에 눈이 흠씬 내렸었는데... 며칠동안 푸근한 날씨로 눈이 거의 다 녹아버렸다.
못내 아쉽다.
아쉬움은 산꾼의 욕심을 적당하게 제어한다.
오히려 다행스럽다.
태백산에 올라 천하를 밟고 눈까지 듬뿍 맞았다면 나는 그 만큼 더 교만해졌을거야.
문수봉에서 천제단으로 이어가는 능선길은 대체로 평탄하다.
오랜만에 산행을 경험하는 동료는 잠시 멈칫했던 행군을 슬기롭게 잘 극복해간다.
산과의 호흡을 균형있게 잘 맞춰가는 의지가 참 멋지다.
산등성이에는 아름드리 주목군락이 펼쳐진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의 고사목이 예사롭지 않게 나의 감성을 자극한다.
태백산 정상부근의 산등성이에서 맞는 주목은 강한 끌림이 있다.
산신령의 지팡이를 만들었던 재목이었을까.
그 신령한 기운이 나의 심장에 전해진다.
피가 맑아진다.
세상을 더 맑게 볼 수 있도록 마음을 추스려본다.
태백산 천제단이다.
단군조선시대 구을(丘乙)임금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이 제단은 상고시대 부터 하늘에 제사하던 제단으로
단군조선시대에는 남태백산으로 국가에서 치제하였고, 삼한시대에는 천군이 주재하며 천제를 올린 곳이
다. 신라초기에는 혁거세왕이 천제를 올렸고 그 후 일성왕이 친히 북순하여 천제를 올렸으며 기림왕은
춘천에서 망제(望祭)를 올렸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방백수령(方伯守令)과 백성들이 천제를 지냈으며 구한말에는 쓰러져가
는 나라를 구하고자 우국지사들이 천제를 올렸고, 한말 의병장 신돌석 장군은 백마를 잡아 천제를 올렸
고 일제때는 독립군들이 천제를 올린 성스런 제단이다. 지금도 천제의 유풍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으며
산꼭대기에 이같이 큰 제단이 있는곳은 본토에서 하나밖에 없다.
태백산 정상에 위치한 천제단은 천왕단(天王檀)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단(將軍檀), 남쪽에는 그보다 작
은 하단의 3기 로 구성되었으며 적석으로 쌓아 신 역(神域)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있는 천왕단은 자연석
으로 쌓은 둘레 27.5m, 높이 2.4m, 좌우폭 7.36m, 앞뒤폭 8.26m의 타원형이며, 녹니편마암의 자연석으로
쌓아져 있는데 윗쪽은 원형이고 아래쪽은 사각형 이다. 이러한 구도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 때문
이라고 한다.
검푸른 빛을 띤 까마귀떼가 지친 산행객들을 반긴다.
흔히 흉조로 알려져 섬칫한 기운마저 돌게 했던 까마귀를 태백산 천제단에서 만났다.
흑진주 같은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아름다운 검은옷을 입고 신령스러운 천제단을 지키는 파수꾼일까.
여유있는 모습과 세상을 꿰뚫어 보는 눈 빛이 매섭다.
내가 세상 살아오면서 그동안 지었던 수 많은 죄를 생각했다.
털어내거나 용서받고 싶지는 않다.
내가 지은 죄는 내가 업고 가야한다.
장군단의 모습이다.
장군단은 태백산 최고봉인 장군봉에 위치해 있으며, 천제단보다는 그 규모가 작고 천제단을 호위하는 모습이 다소 앙증스럽다.
옛 조상들께서 자연에대한 경외심으로 그렇게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닮고 싶어하며 제사를 올렸을
마음들이 아름답다.
망경사에서 당골로 내려오는 길에 눈 축제를 준비중이다.
석탄박물관과 더불어 태백시의 겨울 축제로 이어가기 위한 노력들이 분주하다.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 일 시 : 2008년 1월 19일(토)
* 산 행 로 : 검천동 - 검천골 -문수봉 - 천재단 - 장군봉 - 망경사 - 반재 - 당골
* 산행시간 : 5시간 30분
* 위 치 : 강원도 태백시, 경상북도 봉화군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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