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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 散文

아내의 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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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꾀병

 

새벽부터 잠을 설쳤다. 이런저런 약속이 되어 있었던 터라 몸은 곤하지만 잠에서 일찍 깼다. 아내는 이삼일 전부터 정상적인 컨디션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힘들어한다. 서둘러 출근했다. 사무실에 도착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아내의 가녀린 신음소리가 전화음을 타고  간신히 들린다. 다급하게 집으로 향했다. 아랫배가 아프다며 응급실로 가잔다.

 

좀처럼 병원에 잘 안 다니는 성미라 중병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에 꽂힌다. 복막염일까. 응급실에는 갈 데 못 되는 줄 알지만, 세상일이 맘대로 되는 게 있나. 아프면 별수 없지. 응급실에는 응급한 환자도 많지만, 응급실에 오지 않아도 될 환자가 의외로 많아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구급차는 연신 응급환자를 실어 나른다.

 

병실을 못 잡아서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는 방바닥에 박스를 깔고 겨우 체온을 유지하고 있다. 응급상황을 대충 넘긴 환자도 집에 가지 않고 병실 잡아달라고 조른다. 의사는 외래로 진료 절차를 받아서 입원하라고 권하지만 막무가내다. 의사는 치료보다는 환자 설득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어떤 환자는 소변 받아 오라는 용기에 대변을 받아와서 간호사와 실랑이를 벌인다. 또 다른 환자는 고함을 지르며 간호사에게 욕을 해댄다. 대한민국 최고시설을 갖춘 응급실의 풍경은 한마디로 아연실색할 정도다.

 

전공의 의사들은 알듯 모를듯한 질문을 이어가며 차트에 기록한다. 간호사들은 이 혼란한 틈에서 어떻게 정상적인 업무를 보는지 존경스럽다.

아침 8시 30분에 도착한 우리는 기초적인 검사 후 진통제와 생리식염수 링거를 꽂은 채 각종 검사를 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오후 3시에 요로결석이라는 확진이 나왔다.

 

급한 환자는 검사도 받아보기 전에 명줄 놓기 딱 좋은 곳이 응급실이다. 의사들 말은 뭔 병인지 알아야 치료를 할 게 아니냐고 나름대로 명분을 고른다. 다행히 아내는 통증이 심할 뿐,  돌아서면 멀쩡한 꾀병이라서 응급처치하고 약을 받아서 왔지만, 정말 응급환자는 응급실에 가서 응급상황을 해결하려면 고려해 봐야 할 일이다. 아이러니다.

 

제대로 된 응급처치 방법이 없을까.

이대로는 응급실이 더 이상 응급처치 능력을 보장할 수 없다.

 

(200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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