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 부대]
독립군 부대는 단체명이 새겨진 그 흔한 티셔츠도 없어 단순해서 좋기는 하지만, 혼자 생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독립군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위로가 된다. 이른바 독립군 부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별나고 잘나서 마라톤 독립군이 되는 게 아니라, 사업환경 등 개인적인 여건 때문에 함께하기 힘든 경우에 홀로 서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독립군이라 하여 대충 흉내만 내는 것은 아니다. 마라톤을 대하는 태도나 진심은 여느 동호회 단체 못지않다.
마라톤을 시작했던 2008년에만 하더라도 대회에 참가하는 마라토너 대부분 사십 대 이상이었다. 이삼십 대가 섞여 있긴 해도 별난 청년들이거나 달리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거니 생각했다. 그 시절에도 마라톤 동호회를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회원 상호 간 동기부여하고 어깨를 다독여주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풍경이었다.
달리기 연습 최적의 조건을 갖춘 양재천 다리 밑에도 동호회 전용 장소로 지정된 곳이 몇 있었다. 깔끔하게 단장된 양재천에는 사시사철 물이 흐르고 공기도 깨끗하다.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 또한 달림이들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멋진 스크린이 된다. 한강처럼 큰 스케일의 강이 아니어서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 또한 좋은 점이다.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가 구분되어 있어서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환경은 최고의 장점이기도 하다.
멋모르고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새벽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기분이 꽤 달짝지근했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살짝 달려보니 1km를 달린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임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그 흔한 공책 한 권 제대로 받아 본 기억이 없는 점을 떠올리면 달리기에 소질이 없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기밀이다. 그런 내가 달리기를 하다니 소가 웃을 일이었다.
지인이 하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자고 제의했다. 마라톤에 대한 기본 상식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생짜배기 마라토너가 된 것이다. 동호회에 가입하여 차근차근 배우면 될 텐데, 낯가림이 있는 탓이라 동호회 가입하는 것도 망설였다. 누가 손 잡아 주면 성실하게 잘 따라 하는 성격이어서 편하게 시작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이른바 만주 벌판을 누비며 마라톤의 독립을 위하여 혈혈단신 혼자 달려야만 하는 야생의 독립군이 된 것이다.
독립군은 권태가 생기거나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 응원하거나 간섭해 주는 동료가 없어서 나태해지는 점은 단점이다. 독립군 중에 구 사장은 나보다 칠팔 년 마라톤 선배인데, 개천절에 실시하는 강남국제평화마라톤에 함께 참가했다. 자영업을 영위하는 그에게 고객과의 무언의 약속은 꺾을 수 없는 신념이다. 개천절이 주말이 아니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부담이 많아 강남국제평화마라톤에 참석한다는 것은 오후에라도 문을 열겠다는 심산이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출발선에 서니 완주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가슴이 묵직하게 조인다. 지난주 동대문마라톤에서 무리했던 후유증이 좀 남아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기록보다는 완주에 비중을 두겠다고 다짐했지만, 마음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하프 지점까지 발걸음이 가벼워서 은근 욕심을 내봤지만, 25km 지점을 통과할 때쯤 무릎에 통증이 생기고 종아리 부위에 근육통이 일어선다. 스프레이 파스가 있는 곳마다 들러서 응급처치했다. 30km 지나면서 완전히 지쳤다. 그동안 장거리 달리기 연습이 모자랐던 뻔한 결과였다. 페이스가 급격히 느려졌지만 걷지 않으려고 이를 앙다물고 결승선에 당당하게 뛰어 들어가는 상상을 되뇌었다.
결승선에 지친 몸으로 도착했다. 나의 든든한 응원군이었던 구 사장이 반겨준다. 당연히 가게 때문에 하프만 완주하고 갔을 것이라, 생각했던 터라 더없이 반갑다. 먹줄을 놓듯 정확하고 세심한 그의 성격에 비추어 어리둥절했다. 오늘 하루 그의 성실함에 구멍을 내기로 작정했나 보다. 흔히 완전함을 최선의 경지로 인식하지만, 그것은 완벽하게 흐트러짐이 없는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바람 많은 제주에 바람 지나갈 구멍 없이 꽉 막힌 담벼락은 바람에 넘어지기 쉬우므로 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가 가게를 비운 오늘은 제주도 돌담 같은 것이다. 그림으로 말하면 여백을 두어 감상자들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여유를 두는 것이다. 가끔은 완전하게 계획된 구성에서 비틀림이 필요하다. 그의 오늘은 피천득 선생의 수필 '청자연적'에 새겨진 연꽃잎 중에, 하나가 꼬부라져 있어서 더 완전하고 멋진 작품이 된 것과 같다. 독립군은 자신의 목표를 위하여 빈틈없이 계획하고 채우려고 애쓰면 쓰러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조금은 느슨하고 어설픈 가운데서 최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새기고 한 발짝 더 빨리 달리기보다는 한 걸음 더 멀리 달릴 수 있기를 염원한다.
* 일시: 2025년 10월 3일
* 대회 : 강남국제마라톤(양재천, 탄천 일대)
* 기록: 4시간 11분 27초(F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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