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악산
여름산은
꽃과 나비를 비롯한 벌레들, 그리고 계곡을 흐르는 물로 대변된다.
여름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어떤 희열을 얻기 보다는
소나기 같은 땀을 흘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측정해 보는 일일 것이다.
화악산 들머리에 이르기까지 길게 이어지는 작은 천에는 맑은 물이 쉼 없이 흐른다.
저 많은 물들을 어디에 품었다가 내 놓는 것일까.
38교 입구에서 조무락계곡을 따라 물길의 근원을 찾아 오른다.
또랑또랑거리며 계곡을 따라 내려오던 물이 석룡산 산등성이 정상 부근에서 뚝 끊긴다.
이제부터는 그 어디에도 물이 없다.
그러면 저 아래 계곡에 힘차게 넘치는 물은 어디에 숨었단 말인가.
이 큰 산 마디마디에 품었을 물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가 호흡하는 흐름에 따라 계곡으로 물을 내 놓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물이 큰 계곡을 가득 채우고도 기개가 넘친다.
있는듯 없는듯
그렇게 숨었던 물이 모여 폭포를 만들고 산을 뒤흔드는 위용을 가졌다.
그래서 자연인가보다.
날씨가 더운데다 땀을 워낙 많이 흘렸던지라
산행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고 힘도 더 많이 든다.
화악산 정상부근에서 군 부대의 철조망을 돌아 나올 쯤에는 그대로 푹 주저앉을 만큼 많이 지쳤다.
차라리 올라 오지 말 것을 후회도 해 보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풀린 다리를 수습하여 힘을 모으며 막걸리 한 잔 쭈욱..
내가 없는 화악산은 아무 의미가 없겠지만
화악산이 없다하여 내 삶의 질서가 바뀔리는 만무하다.
화악산 정상에서 내가 서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의미일 뿐이다.
온갖 잡 생각들을 가득 담아서 올랐지만,
산 정상에 오르는 동안 몽땅 다 비워놓고 한 숨을 크게 쉬고는
산허리를 돌아 내려오면서 다시 주워담는다.
그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소박한 삶의 굴레는 아닐까.
인간이라는 문을 통과할 때,
이미 우리는 다 내려 놓을 수 없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니 몽땅 다 비우려고만 애쓰지 말고
잠깐 비웠다가 다시 담을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인정하자.
그것이 내가 산에 오르는 참된 명분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무조건 비우기 보다는
힘들때는 비웠다가
가벼워지면 다시 담아야 하는 지혜를 익혀가야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산에 오르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기는 듯하다.
이제 작게나마 철이 드는가 보다.
* 일 시 : 2011넌 8월 6일
* 산 행 로 : 경기 가평 38교 - 조무락골 - 석룡산 - 방림고개 - 화악산 - 중봉 - 이끼폭포 - 복호동 폭포 - 조무락골산장 - 38교
* 산행시간 : 6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