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복령
백두대간의 한 자락을 비집는데 비가 내린다.
마침 휴가철이라 백복령 입구에 발을 들여 놓기 까지 무려 7시간이나 걸렸지만,
쉽게 허락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내 마음에 아직 철 모를 욕심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내 자신을 어느정도 알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직은 부족함이 많은가 보다.
아직 받아 줄 준비가 덜 된 백복령에서 대간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아무래도 그는 큰 마음이니까
미천한 나에게 트집을 잡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우중이지만 산에는 고유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그는 눈이 오는 겨울이라 하여 그 천연의 느낌이 변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적당한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산으로 발걸음이 향하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산에 오르면
맑은 공기가 좋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나무 향기가 좋다.
지렁이가 꿈틀대는 흙에서 나는 냄새는 꼭 나의 고향인 듯한 느낌이 있어서 좋다.
철 따라 피고 지는 이름모를 꽃 향기가 좋다.
가끔은 거리낌 없이 자란 억새풀 꼭대기에 앉아서 꼬박꼬박 졸고 있는 잠자리의 천진함이 좋다.
땀을 비 오듯 쏟아 낼 때, 내가 가진 욕망의 쓰레기들을 땀구멍을 통해서 배출해 내는 느낌은 짜릿한 쾌감이다.
산에 오르면
그대로 내 자신을 놔 버릴 수 있어서 좋다.
백두대간을 따라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쭉 이어서 걸어보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내가 마음 닿을 때마다
내게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산에 오를 수 있다면
그곳이 백두산이든 한라산이든 무슨 상관이랴.
내 삶을 통하여 가끔 산에서 산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으면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언제
백복령에서 바로 이어지는 구간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수도 있겠지만 나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저 틈나는 대로 산에 오를 수 있기를 바라며
산에 오르게 되면 크든 작든 행복을 담아 올 것이다.
한 번에 많은 산행을 하거나
백두대간이나 정맥을 따라 종주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 보다는 얽매이지 않고 한 번 더 산에 오를 수 있기를 희망 할 뿐이다.
산에 오르면서 산에 얽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일 시 : 2011년 7월 30일
* 산 행 로 : 백복령 - 잡목지대 - 여명봉 - 원방재
* 산행시간 : 3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