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의 설경
겨울은 눈 길을 따라 왔다가 꽃 길을 따라서 가는가.
덕유산에 겨울이 왔다는 것은
눈이 마음껏 내렸다는 사실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냥 불쑥 덕유산에 오르기로 마음을 정하고부터는
눈이 언제 올라나?
눈이 내리면 좋겠는데...
날짜를 기다리는 손가락 마디마다 눈이 쌓였다.
그런 마음이 통했을까.
그리 많은 눈은 아니지만 전날 눈이 내렸다.
행복한 인연이다.
눈 덮인 덕유산에 오르기까지 며칠을 기다렸다기 보다는 일년을 기다렸다.
작년에 눈 길을 따라 걷던 마음이 가슴에 씨앗처럼 남아서
올 겨울에 다시 싹이 돋기까지 꼬박 일년이라는 세월동안 숙성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작년보다는 한결 여유로운 눈길을 걸을 수 있었다.
물론 산등성이에는
예나 지금이나 바람이 매정스럽게 차다.
나무가지마다
산호 같은 백설의 꽃들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만큼 빈틈 없이 빼곡이 매달려 우리들을 맞는다.
어찌 그냥 지나치다 맺은 인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
당신과 나
이미 오래전부터 운명적인 인연의 끌림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행운이 그냥 생길 수 있었겠는가.
내년에 또
눈 송이를 맺기 위하여 다시 가슴에 하얀 산호초의 씨앗을 심는다.
아니다.
세상 일을 누가 알겠는가.
가슴에 품었던 씨앗을 꺼내 먹어버리면
나는 또 다시
꽃 길이 열리기 전에 덕유산의 설경에 뛰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눈 산에 눈만 있으면 더 멋있었을까
알록달록한 사람이 있어서 더 멋진 것일까.
생뚱맞은 생각을 채 정리하지 못한 채 산을 내려온다.
가슴에 맺힌 덕유산의 향기를 오래도록 품고 싶다.
그 행복을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으리라.
향기가 지워지지 않도록 입도 벙긋하지 않으리라.
그냥
꽁꽁 앓으며 가슴에 담아두고 싶다.
* 일 시 : 2010년 12월 26일
* 산 행 로 : 안성매표소 - 칠연계곡 - 동엽령 - 백암봉 - 향적봉 - 백련사 - 삼공리
* 산행시간 : 6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