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벌초를 할 때마다
얼마나 더 이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내가 죽을 때까지는 주어진 숙명처럼 산소를 돌보겠지만
후손들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강요한다 한들
바쁘다는 핑계로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풀이 너무 무성하게 자라는터라
일년에 한 번 벌초를 하는 것도 힘에 부친다.
그러할진데
요즘은 자녀들을 많이 낳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나마 있는 자녀들도 온실에서 키우듯해서 나약하기 그지없다.
더구나 글로벌화 되면서 삶을 위한 범위가 넓어지다보니
일년에 한 번은 고사하고 몇 년에 한 번 돌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산소는 황폐화 되어 갈 것이고
어쩌다 한 번 찾아가는 산소는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벌초하러 가는 길에 동대구역 플랫폼에서 환승하기 위하여 잠시 기다리는 틈에
발가락이 잘린 비둘기가 가슴에 안긴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노끈에 발가락에 감기면서 잘라졌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채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그나마 남은 발가락에도 가는 노끈이 감겨 있는 듯하다.
이대로 두면 몽땅 잘릴 것이 분명한데
풀어주고 싶지만
나를 경계하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부디 수명 다하는 날까지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축대에 벌집을 지은 말벌들은 경계가 날쌔고 빈틈이 없다.
조심하였지만
손가락에 한 방 쏘였다.
잠시 손가락이 마비가 될 정도로 침은 위력이 있다.
벌초하다가 벌에 쏘여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헛말은 아닌 듯하다.
죽은 조상 벌초하려다가
멀쩡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니
이 일을 어떻게 이어가야하나...
잦은 비로 저수지에는 물이 가득 차 있고
물빛은 고요하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세월을 가리지 않는다.
낚싯대에 매달린 찌 하나면
우주를 다 읽고도 덤이 남는다.
대추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곧 추석이 다가올테고
벌초를 하는 사람들은
올 한해 조상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다했다는 마음을 담을 수 있어서 한결 가볍다.
올해는 이렇게 끝냈는데..
내년은
아니 10년 후, 20년 후에는 어떻게 할까.
그때 일은 그때가서 해결하는 수 밖에...
아직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힘 닿는데까지 아무 근심없이 주어진대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 일 시 : 2010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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