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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설악산 - 흘림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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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 흘림골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지만

설악에 든다는 것든 더 큰 설레임이다.

설악의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흘림골인지라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초입에 들면서부터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흘림골의 이정표를 따라왔건만

이곳은 설악의 비경이 서린 골짜기가 아니라

흡사 공사판을 연상케한다.

몇 년 전에 사상초유의 폭우가 쏟아지던날 산사태로 계곡이 무너져 버렸다 한다.

흐르듯 멈추듯 흘러가던 물을 담았던 담이나 소도 보이지 않고

황량한 계곡에는 믿기 어려운 현실이 놓여있었다.

또 다시 수백년, 아니 수천년은 흘러야 설악의 계곡 특유의 향기를 담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 세대에서는 더 이상 아름다운 계곡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심폭포는 간신히 화를 면했다.

흘림골 주 계곡에서 약간 비켜 있었던 때문이리라.

흘림골의 상징이었던 여심폭포는 여전히 산객들의 음흉한 눈초리를

아무일 아닌 듯이 받아들인다.

 

여자의 마음은 무엇일까.

이렇게 오줌누듯이 흘려버리면 모든 근심은 순간인 것을

우리는 집착으로 인해 근심을 쌓는다.

여심폭포에서 기도를 하면

간절히 바라던 자식을 얻을 수 있다 한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폭포 앞에서서 마음을 모으고 있으면 양껏 자식을 생산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식을 얻겠다는 마음도 결국은 집착에 불과한 것이니까

그 집착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기도를 하면

또 다른 횡재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여심폭포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 없는 위엄임을 가슴에 새긴다.

 

 

 

 

 

 

선녀가 하늘을 올랐다는 등선대에서 둘러보는 설악은 멋지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만은

잠시 선녀가 설악을 비운 틈에 우리는 설악을 점령한 것이다.

객들이 모여서 소란을 피워도 꾸지람이 없다.

그것마저도 사랑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설악이 좋다.

 

 

 

 

 

 

 

 

 

 

 

 

 

등선대에서 하산길을 잡으면 주전골 계곡으로 흘러든다.

그 옛날 이 깊은 골짜기에

 도둑들이 터를 잡고

위조화폐를 주조했다해서 주전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천하명산 설악에서

아름다운 골짜기의 정기를 받아 만들어낸 화폐였다면

설령 그것이 위조였다 하더라도

진짜와 진배없는 정성이 서렸으리라.

 

 

 

 

 

 

 

 

 

주전골은 흘림골처럼 많이 다치지 않아서

원형을 그런대로 보존하고 있어서 

설악의 향기가 많이 남아있다.

주전골 계곡을 내려오면서 내려다 보는 풍경

올려다 보는 풍경

어느것 하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이 아름답다 하지만

더 이상의 아름다움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

이만큼만으로도 내 가슴은 이미 가득 차 버린다.

참 행복한 발걸음이다.

  

 

 

 

 

 

 

  

 

 

 

 

 

 

행여 설악에 들거든

흘림골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주전골의 향기를 담아 가슴의 상처를 씻으라.

그것이 행복인줄 아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으리라.

 

부족하지만

네 아픔을 배려할 수 있고

내 아픔을 치료 받을 수 있으면

어찌 행복을 저울질 할 수 있겠는가.

 

 

 

 

 

 

용소폭포의 물줄기가 쉼없이 이어져 떨어진다.

천날만날 쉬지도 않고

누구를 위해 저렇게 부지런이 어어져 내리는가.

설악을 위함인가.

산객들을 위함인가.

그것은 아닐것이다.

누구를 위한 행동이었다면

그도 쉴 틈을 찾아서 게으름을 피웠을테니까.

그는 누구를 위하기보다는

오직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일테야.

저 멈추지 않는 기운은

내가 본 받고 싶은 아름다운 격려이다.

 

 

 

 

 

 

 

 

 

  

 

 

 

 

 

나는 다음에 또 어느 때에 설악에 들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는 좀 더 경건한 마음으로 설악의 품에 안기고 싶다.

그가 내게 배려했던 것처럼

나도 그를 배려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설악을 걸으면서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었고

힘든 산행을 이어오면서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내가 설악을 위하여 내어 준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가 내게 준 것은 너무 많다.

송구하지만 그것도 나에게 주어진 행운이리라.

그만큼 더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 일     시 : 2010년 8월 22일

 

* 산 행 로 : 흘림5교 - 여심폭포 - 등선대 - 주전골 - 용소폭포 - 선녀탕 -성국사 -오색약수터

 

* 산행시간 :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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